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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공시 패닉'…퀵배달·AS까지 2억6천만건 거래 일일이 살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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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나 소비자가 개별 기업의 정보기술(IT)서비스와 물류 거래 내역까지 과연 알고 싶어 하는지 궁금합니다.”

24일 만난 한 기업의 공시 담당 임원은 이같이 말했다. 이 기업의 공시 담당부서는 내달 ‘물류·IT서비스 거래 현황 공시’ 의무화를 앞두고 주 52시간 근무 위반 위험을 떠안은 채 관련 작업을 하고 있다. 수십만 건에 달하는 거래 내역을 일일이 파악해 공시 여부와 범위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시 규정 개정에 따라 기업은 어쩔 수 없이 관련 공시를 준비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해당 내용에 대한 우려와 불만이 크다. 계열사 간 정당한 거래까지 낱낱이 밝히라는 건 기업을 잠재적인 범죄 집단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거래 자료만 2억~3억 건
공정위가 지난해 지정한 공시대상기업집단은 총 71개로, 해당 기업 수는 2612개 사다. 공정위는 이들 기업 가운데 물류·IT서비스 관련 계열사와 거래액이 매출·매입액의 5% 이상이거나 50억원 이상(상장회사는 200억원)인 경우 그 거래 현황을 매년 5월 31일까지 연 1회 공시하도록 했다.

기업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기업이 한 해에 처리하는 IT·물류 관련 거래만 수십만 건인데 공시 대상 거래인지 여부를 따지기 위해서는 거래 내역을 모두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612개 사의 물류·IT서비스 거래 내역이 회사당 한 해 10만 건이라고 가정해도 기업이 조사해야 할 총 거래 건수는 2억6000만 건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제 계열사의 물류·IT서비스 거래 내역에는 인터넷 사용 관련 애프터서비스(AS) 업무부터 폐쇄회로TV(CCTV) 설치, 퀵배달·택배 서비스 등 사소한 거래까지 포함해야 한다.

공시 양식에 맞춰 거래 내역을 분류하는 것도 부담이다. 공정위는 공시에 거래 회사명을 비롯해 △업종 △거래 품목 △대금 지급 조건 △거래 상대방 선정 방식 △매출 등을 모두 기재하도록 했다. 한 시스템통합(SI)업체 관계자는 “공시와 거래 담당자가 임의로 판단해서 거래 항목을 분류해야 한다”며 “자칫하다 공시 오류로 회사가 과태료 처분이라도 받으면 신뢰도에 타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신제품·영업전략 노출될 수도”
경제계에선 신제품과 각종 영업 전략 등이 공시를 통해 노출될 수 있다는 것도 지적한다. 한 반도체기업 관계자는 “반도체는 모두 항공으로 수송한다”며 “물류 거래 내역에 비행기 노선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함께 공시될 경우 경쟁사에 고객사와 거래 물량 등이 알려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일부 기업은 이 같은 공정위 공시 내용이 정부 제도 간 이해상충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등은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고 해당 정보의 유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 공정위 공시 규정을 따르는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새어 나갈 수 있어서다.

신제품의 영업전략이 IT서비스 공시를 통해 알려질 수 있다는 것도 기업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한 가전업체 관계자는 “최근 블록체인이나 대체불가능토큰(NFT) 관련 서비스를 늘리고 있는데, 해당 내용이 공시되는 순간 영업전략이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위해 계열사 활용도 필요”
공정위는 지난해 8월 물류·IT서비스 거래 현황 공시 규정 신설을 예고하면서 “기업 스스로 거래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이에 대해 기업은 공정위가 사실상 기업의 물류·IT 관련 내부거래를 줄이기 위한 압박 수단으로 규정을 신설한 것으로 해석했다.

실제 공정위는 물류·IT서비스 거래 현황 공시를 추가하면서 계열사와 비계열사 간 거래액을 합한 수치도 공시하도록 했다. 공시 대상 기업은 계열사 거래 총액을 기재해야 하기 때문에 비계열사 거래 금액도 자연스럽게 알려질 수밖에 없다.

반면 업계에선 소비자 편의를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고 비판한다. 한 가전업체 관계자는 “가전회사에서 배송 업무는 제품 설치까지 해야 마무리된다”며 “비계열사에 물류를 맡길 경우 배송까지는 가능하지만 냉장고, TV, 에어컨 등의 설치와 관련해선 외부 인력을 일일이 교육해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박신영/정지은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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