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현 정부의 조직체계에 기반해 조각 인선을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정부 조직 개편은 새 정부 출범 뒤로 미루기로 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임기 초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속도 조절에 들어간 것이다.
安, “현 정부 기반 조각 추진”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7일 서울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정부 조직 개편과 관련해 “인수위 기간 중 조급하게 결정해 추진하기보다는 당면 국정 현안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안 위원장은 “조각 인선도 현행 정부 조직체계에 기반해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인수위는 당초 4월 중순 정부 조직 개편안을 확정해 발표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정부 출범 이후로 시기를 미뤘다. 6·1지방선거를 감안하면 조직 개편 시기는 더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안 위원장은 “그동안 인수위는 정부 조직 개편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검토해 왔다”며 “최근 국내 경제 문제, 외교 안보의 엄중한 상황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선(先) 정부 조직 개편 후(後) 장관 인선’을 고집하다 야당의 반대에 막혀 임기 초 국정 공백이 발생하는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생 문제가 산적한 시기에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이어 정부 조직 개편안을 두고 정쟁을 벌일 경우 국정 운영의 동력을 잃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정부 조직을 개편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한다. 하지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여성가족부 폐지 등 인수위의 정부 조직 개편 방향에 반대 의사를 밝혀 왔다. 현재로선 국회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도 정부조직법을 두고 여야가 대치하면서 법안 제출 후 52일 만에 통과됐고,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도 법안 발의 41일 만에 처리됐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부조직법 통과는 국회의 몫인데, 확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인선을 하면 국정에 굉장한 공백이 생긴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현 조직법 체계 내에서 인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 실장은 “정부가 하고자 하는 정부 조직 개편은 야당과 협의하고 의견을 경청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여가부 폐지, 없던 일 되나
현 정부 조직에 맞춰 조각 인선을 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윤석열 당선인의 ‘여가부 폐지’ 공약 실현도 불투명해졌다. 안 위원장은 “여가부 장관도 이번 조각에서 발표할 예정”이라며 “임명된 여가부 장관은 조직을 운영하면서 문제점이 무엇인지, 국민을 위해 더 나은 개편 방안이 있는지 계획을 수립할 임무를 띠고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공약한 폐지보다는 역할을 재조정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분위기다.공약 폐기 여부에 대해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인 추경호 의원은 “공약은 유효하다”면서도 “여러 견해가 있어 이걸 그대로 밀어붙일 사안은 아니다”고 했다.
폐지설이 나왔던 중소벤처기업부 역시 유지된다. 인수위는 한때 중기부 관할인 중소기업 업무는 산업통상자원부로 옮기고 벤처·스타트업 육성 기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에서 출범한 부처인 중기부를 해체하는 것은 전 정권 지우기에 불과하다며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
최지현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다시 한번 중기부를 폐지할 계획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현행 정부 조직대로 인선 예정 중”이라고 말했다.
인수위가 현행 정부 조직을 유지하겠다고 밝히면서 통상 기능을 둘러싼 산업부와 외교부 간 기 싸움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다만 현 정부 조직을 기반으로 각부 부처 장관들을 임명한 뒤 정부 조직 개편이 이뤄지면 통폐합 등의 과정에서 업무 공백이나 혼선 등의 부작용이 나올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