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정부의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강화와 전세 대출 규제가 맞물린 결과다.
급등한 보유세를 월세로 충당하려는 임대인과 높아진 대출 문턱·치솟는 금리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월세를 선택하는 임차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수요가 늘다 보니 월세 가격도 고공행진이다. 잇따른 부동산 정책의 부작용을 무주택 서민이 '월세 폭탄'으로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1월부터 3월까지 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를 낀 거래 비중은 37.33%(1만7628건)으로 집계됐다. 올 1분기만 반영한 수치라 연내로 하면 사상 처음으로 40%를 웃돌 것이라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월세 비중은 임대차법이 시행된 2020년 7월 이후 빠르게 늘고 있다. 2019년엔 월세 비중이 28.1%(5만1048건)에 그쳤는데 2020년엔 31.15%(6만927건), 2021년엔 37.67%(7만3690)을 기록했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의 월세 거래량은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1년 이후 사상 최고치였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지난해 이후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려는 임대인이나 월세만을 찾는 임차인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추진한 보유세 강화 영향이 컸다고 분석한다. 정부의 개별공시지가 현실화로 공시지가가 크게 뛰면서 보유세 부담이 커진 탓이다. 임대인은 불어난 세금을 내기 위해 매월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월세를 선호하게 됐다.
실제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난달 "임대인의 보유세가 1% 증가하면 증가분의 46.7~47.3%가 전가된다는 내용의 실증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2020년 7월 시행된 임대차 3법도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로 임대인이 원하는 전세 보증금을 받지 못하게 돼서다. 이렇다 보니 임대인들은 신규 계약 때 월세를 선호하게 됐고, 덩달아 전세 매물이 귀해졌다. 자연스럽게 전세가격은 상승했고, 임차인들은 높아진 전세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월세 계약을 맺는 경우가 늘었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대책에 따라 전세대출이 어려워진 점도 이같은 현상에 한 몫 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4월 코로나19 확산 이후 급격하게 불어난 가계부채와 집값 상승을 억제한다는 대출 규제 수위를 높였다. 금융당국이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율 등을 직접 관리하면서 부동산 관련 대출이 잇따라 중단됐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지난해 9월 7.8%에서 10월 6.1%, 11월 5.9%, 12월 0.2%로 계속 하향세를 띠었다. 올 들어선 대통령 선거 직전인 2월까지 두 달 연속 감소했다.
이렇게 전세 대출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을 본격화했다. 시중금리가 덩달아 오르면서 시중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최고 금리는 연 5%를 넘어섰다. 미국이 고강도 긴축에 나선 데다 한국은행 역시 연내 기준금리 인상에 더 속도를 낼 전망이라 당분간 대출금리의 가파른 상승세는 불가피한 실정이다.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되는 비율인 전월세전환율이 연 4.1%(올 1월 기준)라 오히려 은행 대출 금리보다 낮은 실정이다. 임차인 입장에서도 높아진 대출 금리를 감안했을 때 오히려 전세보다 월세가 유리해졌다는 의미다.
당분간 이같은 월세 심화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임대차 3법 시행 2년을 맞는 오는 8월 이후 전세 기간(2+2년)을 다 채운 물량이 대거 시장이 나올 전망이라서다. 이들 물량을 중심으로 전세 가격이 급등하면 월세 전환 속도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월세 가격도 계속 오를 가능성이 높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2월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 가격은 125만2000원이다. 지난해 2월만 해도 113만2000원이었는데 지속적으로 올라 1년 새 11%가 상승했다.
중저가 아파트가 밀집돼 있는 강북 지역의 월세 가격 상승세가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강북 지역 평균 월세 가격은 지난해 2월 100만6000원에서 올 2월 119만1000원으로 18% 뛰었다. 이에 비해 강남 지역은 같은 기간 123만9000원에서 131만원으로 5.7% 상승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주택 공급이 확대되지 않는 한 가격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고, 월세화 현상도 장기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임대차 3법의 본래 목표였던 주거 안정 취지가 무색해지고 오히려 서민들의 부담만 커진 셈"이라고 말했다.
김은정/이혜인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