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이 내려간다’고 하는 수요·공급 법칙에 따른 가격 결정은 경제학의 기본 틀이다. 노동의 가격은 임금이므로 노동 수요가 많으면 임금이 올라가야 마땅하다. 취업률이 높다는 것은 노동 수요가 많다는 뜻이고 그러면 임금이 올라야 하는데,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 이후 30년간 일본의 평균임금 수준은 거의 변화가 없다. 참고로 2020년 평균임금은 424만엔(약 4457만원) 수준이다(OECD 조사). 일본은 취업률은 높은데 왜 임금이 오르지 않는 것일까?
일본은 전직(轉職)률이 낮으며 정사원 ‘종신고용’과 같은 장기고용 관행도 건재하다. 장기고용은 일관적인 인적자본 축적에는 도움이 되나, 경제 환경 변화 대응에는 취약성을 드러낸다. 지난 30년간 성장 상실기를 겪으며 정규직 임금도 그리 오르지 않았을뿐더러, 소매업이나 복지 서비스 업종은 물론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도 급료가 낮은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났다. 비정규직 비율은 거품경제가 한창이던 1989년 19.1%에 불과했으나 2021년에는 36.7%를 기록하고 있다(총무성 노동력조사). 성장 상실과 비정규직 증가가 임금 수준이 오르지 않은 주된 이유다.
조직이나 집단에서 배제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일본인들인지라 낮은 임금이라도 참고 계속 일하는 성향을 보인다. 리먼 쇼크나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정책당국도 고용 유지를 우선하는 편이다. 코로나19가 만연하자 일본 정부는 사원을 해고하지 않는 기업에 ‘고용조정조성금’이라는 보조금 지급 정책을 시행했다. 그 규모가 약 600만 건, 5조5000억엔(약 55조2000억원)에 이른다. 생계가 걸린 고용 유지 정책이기는 하나 성장 잠재력이 높은 산업으로의 노동 이동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일본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디지털 ICT 분야에서 뒤지고 있다. ICT에서 요구되는 빠른 변화 대응력과 끼 있는 감성 살리기에 약하기 때문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성장 분야로의 노동 이동 촉진’을 호소하고 있고, 후생노동성도 디지털 교육 훈련이나 정사원으로의 전환을 내세운다. 하지만 모험적 투자를 주저하는 일본 기업과 고용 불안을 꺼리는 노동자 심리가 맞물려 한정적인 효과에 머물고 있다.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로 노동력이 이동하고 임금 수준도 높아지는 현상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일본 학생들은 거의 통일된 복장을 하고 취업 활동을 하며 입사식에 임한다. 누구 하나 용기 있게 톡 튀는 복장으로 임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구호로는 ‘온리 원(only one)’이라며 개성을 내세우곤 하지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두려움에 앞으로 나설 수 없는 분위기다. 설사 나서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방관한다. 어느 한 개인이 자신에게 쏠리는 주변으로부터의 뭇시선을 못 견뎌 하는 곳이 일본이다.
실업을 터부시하는 일본인지라 높은 생산성 추구보다는 고용 유지를 선호한다. 실제로 일본의 생산성은 크게 떨어졌지만 실업률은 2.8%(2021년)로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총무성 자료). 반면 한국은 2015년부터 평균임금이 일본을 능가했으나 청년 실업률은 아주 높아 그 문제 해소가 절실하다. ICT 인력의 일본 진출로 실업률 저하를 모색하고, 일본의 풍부한 지역 문화사업과의 연계로 양국 관계 개선을 도모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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