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기아가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에 따른 미국 시장 위축에도 지난 1분기 선방했다. 친환경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세 배 늘어난 데다 제네시스가 역대 1분기 중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덕분이다. 지난해 연간 기준 처음으로 혼다를 제치고 미국 시장 5위에 오른 데 이어 1분기에도 5위 자리를 지켰다.
3일 업계, 외신 등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1분기 미국에서 32만2593대를 판매했다. 작년 동기 대비 3.7% 감소한 실적이다. 그러나 이날까지 1분기 판매 실적을 공개한 도요타(-14.7%), GM(-20.4%), 스텔란티스(-13.6%), 혼다(-23.2%) 등 경쟁 기업이 두 자릿 수 감소율을 보인 것에 비하면 선방한 실적이다. 아직 1분기 판매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포드 등을 제외한 10개 주요 완성차 기업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평균 16.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기아가 선방한 요인 중 하나는 친환경차 판매 급성장이다. 현대차·기아는 1분기 하이브리드 차량 2만8449대, 전기차 1만5724대, 수소차 166대 등 4만4339대의 친환경차를 판매했다. 작년 같은 기간 대비 약 세 배 늘었다. 특히 전기차 판매는 작년 1분기에 비해 약 5.2배 증가했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5(6244대), 기아는 EV6(5281대)가 판매를 이끌었다.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 판매가 급증한 것도 선방의 요인으로 꼽힌다. 제네시스는 역대 1분기 중 가장 많은 1만1723대가 판매되며 작년 동기 대비 42.6% 늘었다. GV70(4114대), GV80(3259대) 등이 판매 증가를 주도했다. 현대차는 연말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GV70 전기차를 생산, 고급 전기차 시장 공략에 나선다. 제네시스는 최근 로스앤젤레스(LA)에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는 독립 소매점을 열기도 했다.
현대차 차종 중에선 투싼, 싼타페, 아반떼가 차례로 판매 톱3에 올랐다. 기아는 K3, 텔루라이드, 쏘렌토 순으로 많이 팔렸다.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제네시스의 판매 증가에다 스테디셀러 모델들이 선전하면서 도요타, GM, 포드, 스텔란티스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랜디 파커 현대차 미국 판매법인(HMA) 수석 부사장은 "계속되는 재고난에도 엄청난 소비자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소매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휘발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도요타, 테슬라, 현대차·기아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자동차 시장조사 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도요타가 하이브리드 차량을 내세워 1분기 시장 점유율 1위(15.6%)를 지킨 가운데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점유율을 가장 크게 늘린 것으로 추정된다. 테슬라의 1분기 시장 점유율은 4.0%로, 1년 전보다 2.2%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기아는 테슬라 다음으로 점유율을 많이 늘린 것으로 추산된다.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시장의 9.7%를 점유했다. 작년 1분기 점유율은 8.5%였다. 자동차 정보업체 에드먼즈는 “테슬라와 현대차·기아의 점유율 확대는 휘발유 가격 급등으로 전기차에 대한 미국 소비자들의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