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경전인 탈무드에 “공짜로 처방전을 써주는 의사의 충고는 듣지 마라”는 명언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소환한 ‘작은 정부론’의 기수 밀턴 프리드먼도 “공짜 점심은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놓여 있다”고 한다. 이렇게 공짜가 위험한 것은 우리가 가진 자원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즉, 공짜는 유한한 자원에 대한 소비 선택을 왜곡시켜 결국 경쟁력 약화와 피폐한 경제구조를 만든다.
최근 석유, 석탄, 가스 가격 급등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이 불가피했음에도, 정부는 올 2분기 전기요금에 적용될 연료비 조정단가를 0원으로 동결했다. 연료비 조정단가란 연료비 변동분을 전기요금에 주기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도입한 요금 항목이다. 다만, 작년 12월 결정된 기준연료비와 기후환경요금은 예정대로 인상돼 ㎾h당 총 6.9원의 전기요금이 오르게 된다. 그런데 기준연료비는 1년에 한 번 조정되고, 연료비 조정단가는 분기마다 조정된다. 따라서 이번에 연료비 인상 요인이 있음에도 동결된 연료비 조정단가는 결국 연말 기준연료비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공짜 전기는 없는 것이다.
물론, 한국전력이 연료비 인상 요인을 모두 떠안는다면 전기요금이 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한전은 이미 작년 5조80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증권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영업손실이 19조9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이 지금까지 쌓아놓은 이익 45조2000억원의 절반 가까이를 올 한 해 쏟아부어야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한전의 차입 규모는 재작년 69조7000억원에서 작년 80조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한 해 이자만 2조원이며, 올해 갚아야 할 차입금도 무려 14조원에 달한다. 이를 한전의 부실 경영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연료비와 전기료의 괴리가 너무 크다. 문제는 한전의 대주주가 대한민국 정부(지분의 18.2%)와 한국산업은행(32.9%)이라는 것이다. 결국 돌고 돌아 세금으로 메꿔야 한다. 실제로 한전이 2008년 2조9000억원의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하자 6680억원의 세금이 투입된 바 있다. 역시 공짜 전기는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두 차례(4·10월) 전기요금 인상을 예고했지만 윤 당선인은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를 공약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연료비와 기후환경요금은 예정대로 인상하되 연료비 조정단가는 동결했다. 이번 전기료 인상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신·구 권력의 기형적 절충안인 셈이다. 결국 이번에도 에너지 정책의 정치화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전기료가 정치 쟁점화할 정도로 민감한 것은 그만큼 전기료가 미치는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비정상적인 전기료는 소비 선택을 왜곡시켜 국가경쟁력을 훼손한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단위당 한국의 전력 사용량은 일본의 2.5배, 미국의 1.6배로 에너지 효율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오랜 기간 물가관리 수단으로 사용돼 온 에너지 가격통제는 에너지 시장의 왜곡과 산업경쟁력 약화를 초래했고, 직면해 있는 탄소중립 전환에 심각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주도하는 가격 결정구조가 아니라 가격 기능이 작동하는 시장구조로 개편해야 한다. 다만, 에너지 시장은 공급자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독점적 구조이기 때문에 수요·공급의 시장 메커니즘에 의한 가격 결정에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작금과 같이 정부 부처가 에너지 가격에 개입하는 것은 정치적 논리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구조다. 따라서 시장 논리에 따라 독립적으로 가격을 결정할 민간전문기구, 가칭 ‘에너지가격위원회’ 설치와 관련 법안 마련을 제안한다.
연료비 조정단가 동결이 발표된 지난 29일 권영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은 윤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시급한 문제로 ‘에너지·유가 문제’를 꼽았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가속화한 에너지 가격 폭등에 대한 합리적 문제의식이다. 그러한 문제의식이 과거와 같이 시장을 도외시한 정부만의 정치적 결단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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