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인들이 코로나 상황에서 고립과 격리에 대해 느끼고 생각한 것을 짧게 써서 일본의 렌가(連歌)처럼 한 편의 긴 시로 만들면 어떨까’. 2020년 3월 영국에 사는 루마니아 출신 시인 이오아나 모퍼고는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48개국 108명의 시인이 참여해 만든 시집 《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안온북스)는 이렇게 해서 출간됐다.
이 시집은 14세기 페르시아 서정시인 하피즈의 시구절 ‘네 고독을/너무 쉽게 놓지 말라/더 깊이 베어라’로 문을 연다. 여기에 터키 시인 괵체누르 체레베이오루가 화답하며 첫 번째 시를 썼고, 다른 시인들이 뒤를 이어가며 연시를 완성했다.
사는 곳은 다르지만 코로나19라는 공통의 고난은 각자의 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인도 시인 란지트 호스코테는 ‘급브레이크와 클랙슨 소리가 사라진 거리에서. 신호등/이 빨간불을 점멸하며 바이러스 경보를 내고 있다’고 썼다. 이스라엘 시인 메나헴 M 페렉은 ‘방에서 나와 텅 빈 발코니로 뛰어간다./내 마음의 벽과 벽 사이를 뛰는 게 오늘의 운동./뇌가 보낸 편지를 침묵의 언어에 배달하는 게 나의 무기.’라고 격리 생활을 묘사했다.
희망도 노래했다. 미국 시인 나탈리 핸달은 ‘인기척 없는 거리에서/마음은 빛과 빛 사이에서 메아리를 끌어내고/지켜본다, 침묵이/사랑에게 무릎을 꿇는 모습을’이라고 했다. 카메룬 시인 응네엔 응튜베는 ‘우리 집 천장에 있는 새들이/울어대는 희망의 노래가 귓가에 울린다/그러니, 친애하는 하피즈, 나는/쉽게 내 고독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다짐한다.
한국에선 김사인·서효인·오은 등 8명의 시인이 참여했다. 오은 시인은 ‘꿈은 만남을 꿈꾸고/희망은 고독사하지 않는다’고 했다. 황인찬 시인이 쓴 ‘차마 창밖을 내다볼 수는 없었어/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났어’라는 구절에서는 코로나 종식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엿보인다.
영어를 원문으로 한 이 시집은 번역서로는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나왔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도 현지 언어로 출간될 예정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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