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높이에서 자연과 함께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출렁다리는 한때 지역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제는 희소성이 사라지며 관광객 발길이 줄어들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세워진 출렁다리가 중복 투자에 따른 예산 낭비일 뿐 아니라 안전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년 한 해만 20개 줄줄이 개통
17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에 설치된 출렁다리는 지난해 말 기준 총 208개다. 2020년 말 188개였던 출렁다리는 작년에만 20개 개통됐다. 한 달에 1~2개씩 새로 지어진 셈이다.출렁다리는 바닥이 고정돼 있는 일반 교량과 달리 케이블이 구조물을 지지해 보행 시 흔들림이 발생하는 보도교를 말한다. 지난 10년간 한 해 평균 11개가 지어졌으며, 최근 들어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경북과 경남, 전남, 강원에 각각 20~30개가 집중돼 있다. 전남 장성군은 2018년 장성호 일대에 제1출렁다리를 설치한 데 이어 도보로 약 20분, 1㎞ 떨어진 곳에 제2출렁다리를 2020년 개통했다.
충북 충주댐 인근에선 지자체 세 곳이 출렁다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제천시는 85억원을 투입해 옥순봉 출렁다리를 지난해 10월 개통했다.
바로 옆에 있는 단양군은 충주댐 인근에 출렁다리 설치를 추진하고 있으며 충주시도 약 100억원을 들여 충주호 출렁다리를 건설할 예정이다. 강인재 재정성과연구원장은 “베끼기 정책으로 특성 없이 지어진 출렁다리는 개통 초기 반짝 관광 유입 효과를 내는 데 그쳐 예산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지역 산업구조와 연계해 중장기적으로 소득을 높일 수 있는 공공시설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최장’ 경쟁 벌이는 지자체들
출렁다리 길이 경쟁도 점입가경이다. 충남 청양군은 207m짜리 천장호 출렁다리를 2016년 개통하며 ‘국내 최장 타이틀’을 내걸었다. 개통 초기 연간 90만 명이 찾아오며 ‘핫플레이스’가 됐지만, 최근엔 20만 명 수준으로 방문객이 줄었다.2019년 인근 예산군이 이보다 두 배 가까운 402m 길이의 예당호 출렁다리를 완공하며 국내 최장 자리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당호 출렁다리 역시 개통 2년 만인 지난해 11월 이웃 지자체인 논산시가 세운 탑정호 출렁다리에 최장 자리를 뺏겼다. 탑정호 출렁다리는 570m 길이로 현재 국내 최장이다.
무리하게 출렁다리 설치를 추진하면서 사업이 중단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경북 안동시는 750m짜리 ‘세계 최장’ 출렁다리를 짓겠다며 설계용역을 발주했지만 당초 예산(236억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565억원까지 사업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건설을 보류했다.
○10개 중 4개 정기점검도 안 받아
출렁다리의 안전 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출렁다리는 각 지자체장이 시설물안전법상 정기점검 대상(3종시설물)으로 지정할 수 있지만 법상 의무 사항은 아니다. 현재 3종시설물로 지정된 출렁다리는 123개(59%)에 그친다.관광객이 출렁다리에서 사고가 나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출렁다리는 법상 ‘중대시민재해’ 대상인 공중이용시설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2018년 출렁다리 22곳의 안전상태를 점검한 결과 다수의 교량이 케이블 연결 상태 불량, 볼트 풀림 등 문제가 발견돼 즉시 수리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지난해에는 경기도가 도내 출렁다리 안전관리 실태를 점검한 결과 63건의 불량 사항을 적발해 보수보강을 통보하기도 했다. 행정안전부는 “지자체를 독려해 올해 42개의 출렁다리를 추가로 정기점검 대상에 지정할 계획”이라며 “스카이워크, 집라인 등 관광지마다 비슷하게 지어지고 있는 시설들에 대한 안전지침 마련도 관련 부처와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