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테크놀로지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배터리 내재화다. 미국, 유럽, 중국 등 세계 강대국들은 원료에서부터 완제품까지 배터리 공급망을 자국 내에 구축하려고 혈안이다. 일국(一國) 내 생산이 어렵다면, 인근 국가와 연합해 배터리 블록이라도 만들 태세다.
내재화와 관련한 또 다른 전쟁은 현대차, GM 등 완성차 업체들과 LG에너지솔루션 같은 배터리 전업사 간에 진행되고 있다. 현재는 공생 관계지만, 언젠가 경쟁 관계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배터리 내재화 이슈와 관련해 정근창 LG에너지솔루션 PM센터장(부사장, 전 연구소장)과 강기석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와의 대담 및 인터뷰를 소개한다.
-배터리 내재화는 정해진 미래인 것 같다.
▶(정)“미국 정부는 내재화에 충분히 돈을 쓸 각오를 하고 있어요. 우리에게도 원재료의 탈중국 구조를 갖추라고 요구하고 있고요. 물론 아직 명시적으로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내 배터리 합작공장 파트너사인)GM은 미국 데스밸리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다만, 전구체를 어떻게 내재화할 것인 지에 대해선 아직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강)“미국은 배터리 셀과 패키지는 적어도 미국에서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밑에 단에 대해선 아직 구체적인 얘기는 없지만 니켈, 망간 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할 거에요. 2025~2030년이면 배터리 수요가 5테라와트까지 갈 겁니다. 1테라와트일 때 150만t 정도의 전위 금속이 필요해요. 3테라와트면 리튬이온배터리의 필수 소재인 NCM(니켈,코발트,망간)이 300만t이 들어간다는 얘기에요. 니켈은 그동안 스탠인레스강을 만들 때 들어가는 금속이었어요. 수요가 엄청날테니 당분간 가격이 고공행진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앞으로 배터리에 들어가는 광물들은 몇 년 뒤면 현재의 채굴량보다 훨씬 수요가 많아질 거에요. 지속가능한 미래인 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매장량이 부족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 것 같아요. 채산성이 문제겠죠. 원료 의존성이 커지면서 NCM계에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 다각화해야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광물의 공급 부족 때문에 배터리 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강)“우리 정부가 니켈, 코발트 등 리튬이온배터리의 핵심 소재를 선제적으로 확보할 전략이 있을 지는 의문입니다. 국가 간 협력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특히 현재의 바잉파워를 활용해서 전구체 제조 생태계를 만드는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정)“LG에너지솔루션이 현대차와 함께 인도네시아에 합작 공장을 짓는 것도 니켈 등 배터리 원료가 인도네시아에 많아서입니다. 중립적인 지역에서 원료 조달을 모색하는 등 국제 협력을 강화해야해요”
-각국별 공급망 내재화 전략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강)“배터리를 사고 파는 물류 측면에서 보면 배터리는 사실 굉장히 위험한 상품입니다. 폭발물일 수도 있다는 얘기에요. 그래서 배로 오랫동안 대륙간 이동을 하는 게 맞냐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겁니다. 가격이냐, 안전성이냐 선택의 문제가 발생하는것이죠. 순전히 가정이긴 하지만, 미국이 자국 내 생산을 강화하기 위해 물류 기준을 안전성 측면에서 확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싸게 만들어도 가격이 올라가겠죠”
▶(정)“나라별로는 공급망 내재화와 관련해 약간씩 생각이 다릅니다. 미국은 자국에서 제조하면 모회사가 어디든 상관없다는 전략입니다. 유럽은 유럽 기업이 자국 내에서 배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래서 유럽 출신 기업들에 EU 자본을 몰아주려 합니다. 우리 입장에선 좋은 기회라고 봅니다. 중국에 대한 견제가 첫번째 기회고, 두번째로 중요한 건 배터리 내재화를 하려는 국가들이 고임금 국가들이라는 점입니다. 미국과 유럽 모두 배터리 제조에 관한 축적된 기술이 없어요. 그 빈틈을 들어가기 위한 좋은 기회가 열렸다는 겁니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정)“배터리 제조의 하부구조에 쓰일 수 있도록 노동의 전환이 하루 빨리 필요합니다. 2차 전지 제조는 꽤 복잡한 기계제어의 총집합이에요. 부품도 고정밀이어야하죠. 현재 배터리 공장이 대략 글로벌로 500기가와트인데 3테라와트까지 성장한다면 현 공장 시설의 6배가 더 지어져야한다는 겁니다. K배터리가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려면 해외든 국내든 더 많은 제조 시설을 만들어야 합니다. 공장에 들어갈 제반 산업용 부품 설비를 제어하기 위한 대형 소프트웨어 산업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내연기관에 적응했던 부품사들이 이런 쪽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전환을 도와줘야 합니다”
▶(강)“내연기관이 등장했을 때 마부들이 자동차를 반대한다며 시위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부품 수로 보면 전기차가 훨씬 적기 때문에 아마 많은 수의 부품 회사들이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겠죠. 하지만 좀 더 크게 보면 충전 인프라를 비롯해 전구체, 양극재 제조 설비 등 현재 없는 다양한 제조 시설들이 필요합니다”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전업사 간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나.
▶(정)“이것저것 다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어요. LG가 휴대폰 사업을 접을 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다른 기업이 훨씬 잘 하는 것을 따라가려다 본업까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R&D 인력이 3000명이에요. 저는 GM이 스마트하다고 생각합니다. 애플처럼 되려는 거에요. 애플에도 (휴대폰에 들어갈) 배터리 엔지니어가 많지만 직접 만들지는 않습니다. 배터리 제조라는 게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일을 많이 해야합니다. 제대로 만들고 품질을 보증하려면 제조 설비 연구와 업데이트, 제어기술 개발 등에도 돈을 엄청 쏟아부어야하죠. 애플은 이런 걸 잘 압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첨단 배터리를 타사의 인력을 잘 부려서 만들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그럴려면 핵심적인 몇 가지는 딱 쥐고 있어야 하죠. ‘이거 내가 시키는대로 해, 확인할거야’라고 할 수 있는 스마트 바이어라는 겁니다. GM이 애플처럼 진화하고 있습니다. 아마 GM이 직접 배터리 제조에 뛰어든다고 하면 그때는 자동차 제조 고용과 관련해 탈출구가 필요할 때일 거에요”
(GM은 LG에너시솔루션과 합작해 오하이오, 미시간 등 미국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에 배터리 합작공장을 짓고 있다)
▶(강)“국가 차원에서도 그렇고 완성차 제조업체로서도 전기차의 심장을 외주로 조달한다는 것은 넌센스에요. 그래서 미국은 리튬이온(LIB) 기술은 한국에 뒤졌으니 리튬메탈, 전고체 등 포스트 LIB에서 기회를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출발선을 동일하게 만들려는 전략입니다”
▶(정)리튬이온전지만 해도 이미 30년 넘는 산업입니다. 자동차 업체들도 시도는 했었죠. 하지만 이미 그 안에 보이지 않는 기술적 노하우를 극복하기 힘들었어요. IP(지적재산권)에 안 걸리는 게 없을 겁니다. 그래서 리튬이온배터리는 합작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차세대 배터리에서는 주도권을 가져가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이걸 내재화, 다시 말해 자동차 업체가 제조까지 모두 다하려는 전략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GM이나 현대차 등이 하고 싶은 건 기술의 레버리지를 가지려는 것이에요. 자체 생산도 조금 함으로써 배터리 전업사들을 부릴 수 있는 역량을 갖추려는 것이죠. 원하는 배터리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복수의 배터리 공급사에 오더를 내릴 수 있는 경쟁력을 길러보겠다는 겁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