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엔지니어링이 기업공개(IPO)를 철회한다. 국내 증시 환경이 부정적인데다,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로 건설주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가 악화되면서 수요예측 성적표가 부진해서다.
2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날 공모 철회신고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다. 현대엔지니어링 측은 "보통주에 대한 공모를 진행해 최종 공모가 확정을 위한 수요예측을 실시했으나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측면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해 공동 대표 주관 회사 및 공동 주관회사 등의 동의 하에 잔여 일정을 취소하고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고 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25일과 26일 양일간 진행된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100대 1 수준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공모를 계속 진행했을 경우 공모가는 희망 공모가 예상 범위(밴드)인 5만7900~7만5700원의 하단인 5만7900원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았다. 공모가가 하단으로 결정되면 공모 규모는 9264억원으로 상단 기준 1조2112억원보다 큰 폭으로 줄어든다. 상장 후 시가총액도 4조6293억원으로 상단(6조525억원)보다 2조원 가량 낮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최근 기업공개 시장을 들썩이게 했던 LG에너지솔루션에 이어 ‘차기 대어’로 꼽혔다. 상장 절차를 시작할 때부터 건설 대장주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하지만 최근 증시 상황이 악화했다. 전날 코스피지수는 직전일보다 94.75포인트(3.50%) 급락한 2614.49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종가는 지난해 종가보다 12.20% 수준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돈줄 죄기' 신호를 보내면서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통화정책회의) 이후 연내 기준금리를 5회 이상 올릴 수 있다고 시사했다. 올해 금리 인상 속도가 한층 가팔라질 수 있단 우려가 커진 것이다.
건설주 투자심리도 좋지 않았다.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 ‘화정아이파크’ 신축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지난 11일 붕괴사고가 일어나면서다. 건설 대장주인 현대건설은 최근 10거래일 가운데 3일을 제외하곤 모두 하락했고, GS건설, 대우건설 등도 하락 폭이 컸다. 다만 이날은 일제히 오르고 있는데,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에 따른 수급 분산 악재가 사라져서다.
플랜트, 건축 등을 주 사업으로 하는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건설이 38.6%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 주주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현대글로비스가 각각 11.7%씩을 보유한 2대 주주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도 4.7%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번 상장 철회로 정의선 회장을 포함한 특수 관계인들의 구주 매출도 미뤄지게 됐다. 정의선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은 상장 과정에서 보유지분을 매각해 최대 5000억원을 조달할 예정이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