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 있는 모든 미국인의 출국을 권고하고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 직원의 가족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자국민을 대피시킨 뒤 우크라이나 주변에 최대 5만 명의 병력을 증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갈등이 미국과 러시아 간 무력 대결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여행 금지
미 국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있는 미국 대사관 직원 가족들에게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대사관 내 비필수 인력도 자발적으로 출국해도 된다고 승인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에 있는 모든 미국인에게 민항기를 비롯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떠나라고 권고했다. 국무부는 또 러시아를 여행 경보 최고 단계인 4단계(여행 금지) 국가로 지정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을 이유로 여행 금지 국가로 재지정했다.국무부 당국자는 브리핑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말했듯이 러시아의 군사행동은 언제든지 시작될 수 있다”며 “러시아가 무력을 선택하면 러시아가 장악한 크림반도와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의 상황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국무부는 하지만 “러시아에 대해 외교적 길을 계속 추구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을 계속 운영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지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24일 BBC에 따르면 영국 대사관 직원 절반가량도 본국으로 철수할 예정이다.
발트해 주변에 육·해·공군 증원 검토
미국은 우크라이나 주변에 병력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해군 군함 및 공군 군용기와 함께 1000~5000명 규모 병력을 발트해와 동유럽 지역에 파병하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상황이 더 악화하면 추가 병력 규모가 10배로 늘어날 수 있다고 NYT는 전했다.미국은 현재 러시아군과 대치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서부 지역에 150명의 군사고문단을 배치해 우크라이나군 훈련을 돕고 있다. 폴란드에는 미군 4000명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1000명이 주둔해 있다. 발트해에도 NATO군 4000명이 배치돼 있다.
그동안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침공 빌미를 제공할 것을 우려해 군사적 대응을 자제해왔다. NYT에 따르면 소식통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주 초 증원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본토에 병력을 보내는 내용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스페인 등 NATO 동맹국도 동유럽 주둔 병력에 선박과 전투기를 추가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에 반도체 수출 통제도 고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반도체를 비롯한 전략물자를 러시아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인공지능(AI)과 항공우주 분야 등 러시아의 전략산업에 타격을 주기 위해 새로운 수출 통제 방안을 사용할 수 있다며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정보기술(IT) 기기의 수출을 금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WP는 “미국의 제재로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무력화된 것처럼 수출 통제를 하면 러시아도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중국이 러시아와 계속 교류하면 제재 효과가 약해질 수 있다”고 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