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리모델링에 경쟁까지 하진 않죠. 해봐야 힘만 들고 남는 건 없는걸요." (국내 A건설사 관계자)
국내 노후 아파트 단지마다 리모델링 열풍이 불고 있지만 건설사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지만 하다. 국내 리모델링 수주전에서 경쟁입찰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시공능력 5위 안에 드는 A 건설사 관계자는 "리모델링은 별로 반갑지 않은 사업이다. 조합원들만 모른다"며 이 같이 말했다.
1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내 아파트 리모델링 수주전에서 경쟁입찰이 성사된 것은 2019년 서울 서초구 잠원훼미리가 마지막이다.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 수주전은 경쟁 없는 수의계약 일색이다. 서울 용산구 이촌 강촌아파트 리모델링은 수의계약을 통해 현대건설이 참여하고 이촌 코오롱아파트도 입찰에 단독참여한 삼성물산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리모델링 대어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 아파트 수주전에도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이 단독 입찰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맞은편 대치현대는 시공사 선정을 위한 설명회를 두 차례나 개최했지만, GS건설만 단독으로 참여해 수의계약을 맺었다. 건설사 간의 경쟁은 이뤄지지 않았다.
강남의 노른자 입지로 꼽히는 곳에서도 수주 경쟁이 사라진 것은 수익성이 낮은 리모델링 사업을 건설사들이 '계륵'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A 건설사의 또다른 관계자는 "다른 건설사가 관심을 드러내는 곳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어쩌다 두 건설사가 같이 관심을 보이더라도 경쟁을 하기보단 컨소시엄을 꾸려 같이 한다"며 "리모델링 사업은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에 괜히 힘들이지 말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사들이 참여를 꺼리는 이유가 수익성 때문만은 아니다. 리모델링은 기존 내력벽을 유지해야 하기에 평면이 기형적으로 변하고 천장고도 낮아진다. 아파트 브랜드는 새로 달게 되지만, 건설사들이 밀고 있는 주력 상품과는 동떨어진 평면이 나오곤 한다. 결과적으로 건설사 평판을 떨어뜨린다는 우려를 산다.
시공능력 10위권의 B 건설사 관계자는 "리모델링 한다는 곳을 보면 대부분 30년 전 2베이 구조인데, 아무리 기를 써도 최신 4베이는 적용할 수 없다. 3베이를 만들어도 평면이 이상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천장고가 낮아진다는 점도 문제"라며 "1990년대 아파트는 대부분 천정고가 2.3m인데, 스프링쿨러 설치 의무화나 바닥두께 규정 강화 등을 감안하면 15~20cm 정도 줄어든다. 집이 무척 비좁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고 진단했다. 이어 "(리모델링 단지는) 재건축 단지에 비해 시세와 평판 모두 떨어지게 되는데, 건설사 입장에선 반갑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부실공사가 횡횡하던 시기 지어진 벽체를 그대로 둔다는 점도 건설사들이 공사를 꺼리는 이유다. 시공능력 5위권의 C 건설사 관계자는 "1990년대 일부 단지에 바닷모래가 사용돼 부실공사 파동이 일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최신 기술을 써서 안전성을 높일 수는 있다. 하지만 비용과 시간을 들이면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건물 해체와 건설 과정에서 기존 벽체에 충격을 주지 않으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보강도 필요한데, 이는 공사비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차라리 전부 허물고 처음부터 새로 지으면 그런 고생이 필요하지 않다. 더 저렴하면서 더 안전하다"고 했다.
실제 최근 리모델링 공사비는 재건축과 맞먹는 수준으로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삼성물산이 수주한 서울 강동구 고덕동 '고덕아남' 아파트 리모델링의 3.3㎡당 평균 공사비는 669만원이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현대건설·삼성물산 컨소시엄이 수주한 성동구 '금호벽산' 아파트의 3.3㎡당 평균 공사비도 619만8000만원으로 600만원을 넘어선다. 주거환경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서울 재건축 아파트 3.3㎡당 평균 공사비는 513만8000원이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