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국은행이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연 1%에서 1.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물가가 치솟고 대출수요도 여전히 높다는 판단에서다. 한은은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나 한은 발표 직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과 방역 역량 확충을 명분으로 14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방침을 밝혔다.
통화당국이 인플레를 우려해 돈줄을 죄는데, 같은 날 재정당국은 나랏빚까지 내가면서 돈을 더 풀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상 최대인 607조원의 본예산을 본격 집행도 하기 전에 새해 벽두부터 추경을 추진하는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에도 금리를 계속 인하해 경제·민생을 벼랑으로 몰고 있는 터키 정부의 황당한 경제운용을 비웃을 처지가 아니다.
정부와 여당의 추경 추진은 대선 시간표에 맞춘 듯 착착 진행되고 있다. 지난 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설 전 추경이 가능하다”고 운을 뗀 뒤, 민주당의 공식 선거운동 시작 하루 전(2월 14일) 추경안 처리계획 발표, 기재부의 작년 초과세수 60조원 발표, 문재인 대통령의 초과세수를 활용한 소상공인 지원책 마련 지시로 이어졌다. 대통령 지시 다음날 추경 발표까지 잘 짜여진 각본대로 전개되는 모양새다.
코로나로 직접 타격을 입은 이들을 지원하는 것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방식과 시기를 보면 ‘선거를 겨냥한 돈 풀기’라는 의구심을 낳기 충분하다.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 만큼, 작년 12월 본예산을 확정할 때 지원 재원을 보다 충분히 반영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새해 벽두부터 나랏빚까지 내면서 추경을 편성해 지원하겠다는 것은 속이 뻔히 보이는 일이다. 정부는 초과세수를 추경 명분으로 삼고 있으나, 4월 결산이 끝나야 쓸 수 있어 이번 추경예산 중 10조원 이상은 또 적자국채 발행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정부와 여당은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추경으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풀어 단단히 재미를 본 뒤, 작년 4·7 재보궐선거에 이어 올 3월 대선까지 세 번 연속 선거 직전 추경에 나서는 셈이다. 이쯤 되면 옛날 고무신 선거에 버금가는 금권선거라고 할 만하다. 게다가 이재명 후보 측은 정부 추경안이 부족하다며 20조원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뿐인가. 산업통상자원부 여성가족부 등 정부부처들을 여당 후보 공약 개발에 동원하고, 농민 환심을 사기 위한 쌀 20만t 수매·격리, 노동계 표를 의식한 노동이사제·타임오프제도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표에 도움이 된다면 관권선거도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다.
공직선거법 9조에는 공직자의 선거 중립이 명시돼 있다. 선진국에선 보기 힘든 입법사례인데, 그만큼 한국 정치풍토에선 잘 안 지켜졌다는 방증이다. 지금 현재 정부 여당을 보면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모든 행정과 입법의 지향점이 오로지 선거에만 가 있는 나라, 이 또한 한 번도 경험 못 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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