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으로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지난 9월 17일 공개 후 같은 달 23일 TV 쇼 부문에서 1위를 기록, 내리 46일간 그 자리를 지켰다. 이 기간 동종업계인 디즈니와 빅테크 기업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의 주가는 횡보했지만, 넷플릭스 주가는 10% 이상 나 홀로 상승했다. 11월 초 넷플릭스의 시총이 같은 기간 24조원가량 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코로나19 여파로 극장 관람객 수가 급감했다는 점에서 최근 넷플릭스의 급성장이 한국 드라마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무리다. 그러나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넷플릭스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 제작사에 7700억원을 투자했다. 넷플릭스의 2021년 콘텐츠 예산 총 20조원 중 한국 투자 금액이 7000억원 안팎이라고 하니 넷플릭스의 한국 투자가 얼마나 가파르게 증가했는지 알 수 있다. 넷플릭스 입장에서 보면 한국 투자가 상당히 수익성이 높았던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여기서 잠시 2006년 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 직전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그 존재를 인정한, 이른바 ‘4대 선결요건’ 중 마지막까지 양국이 줄다리기 한 것은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였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스크린쿼터 폐지 요구에 대해 절반, 즉 연간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하는 타협안을 받아들였고 그다음 날 FTA 협상이 시작됐다. 이는 1년 이상 걸린 긴 협상에서 문화산업, 저작권산업 부문이 협상의 난제가 될 것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미는 13개 분과로 나눠 2007년 상반기까지 양국을 오가며 8차까지 공식협상을 진행했다. 분과별 미타결 쟁점은 최종회의 석상에서 협상단 대표가 일괄 타결하는 방식으로 매듭지었는데, 당시 미타결 쟁점이 가장 많았던 분과가 지식재산권(저작권) 분야라는 후문이 있다.
일본, 대만에 앞서 한국에 자국의 거대 시장을 내주면서까지 미국이 한국의 영화산업 등 저작권 산업과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그토록 들어오려고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미국 정부의 의도가 단지 5000만 소비자의 한국 시장이 매력적이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2006년 한 신문에 ‘스크린쿼터 축소 경제적 실익 있나’란 제목으로 미국 정부가 협상 전후로 우리나라의 저작권산업을 매우 중시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한국을 넘어 한국 문화에 매료당한 수십억 인구의 아시아 한류 시장을 겨냥한 것이라고 예견한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오징어게임으로 크게 재미를 본 넷플릭스가 이를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 이제 ‘K팝’이 대체한 ‘한류’라는 말은 구닥다리가 됐을 정도로 한국의 문화 콘텐츠는 가히 세계인을 매혹시키고 있다. 지난주 BTS가 팝의 본고장 미국에서 2021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를 수상한 것은 놀랍지만 더 이상 충격적인 뉴스가 아니다.
오징어게임의 성공으로 우리 창작자들과 기업이 얻은 이익도 왜 없겠느냐마는 더 큰 실리는 넷플릭스가 가져갔다. 우리가 ‘재주 부리는 곰’ 신세가 된 것 아니냐는 자조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오징어게임의 성공에 따른 2차 상품화는 대부분 넷플릭스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 기업이 국내 제작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 측이 우리나라 문화산업의 저력을 높게 평가한 것이나 넷플릭스가 한국의 드라마 제작 능력과 성공 가능성을 높이 보고 투자 계약에서 2차 상품화권을 포함한 저작권을 모두 확보한 것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큰 배를 조타하는 것은 뜻밖에도 작은 ‘키’다. 전 세계 문화산업과 글로벌 빅테크를 움직이는 것도 알고 보면 재밋거리인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인 경우가 많고 이는 저작권으로 보호된다. 최근 넷플릭스 외에도 애플TV+와 디즈니플러스가 국내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한국은 글로벌 OTT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동시에 글로벌 OTT 시장의 큰손들이 경쟁적으로 한국 투자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 FTA의 선결 요건이었던 스크린쿼터 축소를 그토록 강력히 요구했던 미국 협상단이 겹쳐 보인다.
남형두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장·교수 >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