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선거가 내년 6월이다. 대선 뉴스에 묻혀 아직 크게 부각되지 않지만 이미 치열한 후보 경합을 벌이는 곳이 적지 않다. 교육감 선거는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지만 이미 17개 시·도 모두 진보교육감 혹은 보수교육감을 표방하고 있어서 정치적 중립 규정이 무색하다.
‘혁신학교’는 진보교육감들이 적극 추진해온 대표 정책이다. 지난 10여 년간 많이 확산됐고 일부에서 고무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학부모들의 불신과 학력 저하 논란이 끊이지 않고, 혁신학교에 근무하던 교사들도 일반 학교로 전출을 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입식이 아닌, 토론과 프로젝트를 지향하는 혁신학교의 취지는 이상적이었으나 그 한계는 태생적으로 예견된 것이었다. 지금껏 혁신학교 운동은 혁신을 방해하는 경직된 교육 시스템을 방치한 채 이뤄진, 일종의 문화 운동이었다. 혁신학교에서는 교사의 교육에 대한 권한과 자율성을 극도로 제한해 놓은 현 제도적 한계를 문화와 교사들의 헌신으로 돌파해야 했다.
선거를 앞두고 교육감 후보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진보 후보들은 혁신교육을 버리자니 기존의 정책 철학을 부정하는 것이고, 혁신학교 정책을 그대로 끌고 가자니 학부모들의 불만으로 선거에 유리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보수 후보들은 혁신학교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길 원하지만, 그러려면 그보다 나은 대안을 제시해야 할 과제가 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혁신학교와 매우 비슷한 교육철학을 지닌 IB(국제바칼로레아) 프로그램이 공교육에 도입되기 시작하자 가장 반대하는 집단도 혁신학교 관계자고, 가장 찬성하는 집단도 혁신학교 관계자다.
IB 도입에 반대하는 혁신학교 관계자는 주로 정책 개발에 관여하는 집행부인데, IB를 귀족교육, 엘리트교육이라고 비판하면서 지난 10여 년 이상 경험을 쌓은 혁신학교에서 얼마든지 IB 같은 혹은 그보다 더 훌륭한 교육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IB의 시범 도입 없이도 IB 같은 수업과 평가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IB 도입에 찬성하는 혁신학교 관계자는 주로 각 지역 혁신학교 교사들, 혁신학교 수석교사 모임들, 혁신학교 교장들, 혁신학교 교과교사 모임 등 현장 구성원들이다. 이들은 기존 혁신학교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IB가 혁신학교의 철학을 제대로 구현할 교원연수 시스템, 평가 루브릭, 채점 시스템 등이 공신력 있게 구축돼 있기 때문에 혁신학교 완성을 위한 실천방안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IB는 교육계에서 주장하는 교육과정 대강화, 교과서 자유발행제, 내신 절대평가, 수능 객관식 폐지 및 절대평가, 교사별 평가, 비판적 창의적 교육 등의 이슈가 이미 다 반영돼 있는 시스템이다. IB에는 혁신학교 운동의 한계 너머에 있는 시스템 혁신의 핵심, 즉 ‘교권 선진화’ 요소가 오롯이 포함돼 있다. 성취기준, 평가기준을 교사가 직접 만들고, 교사에게 교과서를 집필할 기회를 주며, 획일적 시험을 탈피해 자유롭고 창의적인 교육을 가능하게 한다. 정성평가 채점도 교사들끼리 교차 검증하게 해 교사들의 집단 지성으로 채점의 신뢰성을 확보하게 한다. 강력한 학습자 중심 수업을 하면서도 학력 논란이 전혀 없다. 학력 우수성이 50여 년에 걸쳐 전 세계 명문대에서 검증됐기 때문이다.
IB는 내신과 입시에서 전 과목 논술·프로젝트 방식의 평가 혁신을 담고 있지만, 평가 혁신에만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시스템 전체의 혁신을 담고 있다. 특히 교사에게 지금보다 훨씬 큰 권한과 자유를 주는 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혁신학교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혁신교육과 IB교육을 비교 분석한 ‘세종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교육과정 도입방안(연구책임자 손민호 인하대 교수)’에 의하면, 혁신교육과 IB는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하는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혁신교육을 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IB가 실천방안으로 활용될 수 있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다. 진보든 보수든 현 혁신교육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에 참고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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