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을 향한 '삼성생명 봐주기'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이달 초 금융위원회 법령해석심의위원회가 삼성생명 제재안에 대해 회사 측에 유리한 해석을 내리면서 특혜 논란을 둘러싼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는데, 금융위가 이번 달에도 삼성생명 제재안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않기로 하면서 최종 의결 시기가 미뤄졌기 때문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융위가 제재안 의결을 장기간 지연시키면서 삼성생명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생명 제재안' 10월에도 의결 없다…연내 처리 여부도 '불투명'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달 예정된 정례회의에서 삼성생명 제재안을 의결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써 삼성생명 제재안의 최종 의결 여부는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이 중징계를 결정한 지 11개월째 답보 상태에 머물게 됐다. 현재로서는 연내 처리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다.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이달 내로 삼성생명 제재안에 대한 결론을 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태"라며 "최종 의결 절차가 오는 11월에 진행될지, 연내에 마무리될지에 대해서도 확답이 어렵다. 충분한 논의를 통해 결론을 짓고자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지금까지 삼성생명 제재안 심의 과정에서 6차례 안건소위원회 논의를 진행하면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해 고의로 삼성생명을 봐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기간 금융위의 자문기구가 금감원이 삼성생명의 주요 징계 사유로 제시한 2개의 안건에 대해 회사 측에 유리한 해석을 내놓으면서 특혜 논란이 더욱 불거졌다.
금융위 법령해석심의위원회는 지난 8일 보험사가 계열사에 대해 계약 이행 지연 배상금을 청구하지 않은 것이 보험업법에서 금지한 계열사에 대한 '자산의 무상 양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는 금융감독원이 거론한 삼성생명 징계 사유 중 '삼성SDS 부당지원'에 대한 해석이다.
앞서 금감원은 2019년 종합검사에서 삼성생명이 계열사 삼성SDS에 의뢰해 1561억원 규모의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계약서에 기재된 이행 지연 배상금을 청구하지 않은 것을 문제로 봤다. 150억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받지 않은 것을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으로 판단해서다. 보험업법에 따르면 보험사는 계열사에 자산을 무상으로 양도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대통령령은 금지 대상을 '증권, 부동산, 무체재산권 등 경제적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자산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금융위 법령해석심의위원회는 삼성생명이 요양병원에 입원한 채로 암 치료를 받은 가입자에게 의학적 자문 과정을 밟지 않고 암 입원비 지급을 거절한 것을 두고도 금감원과 상반된 해석을 내놨다. 금감원은 해당 사안이 약관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중징계 사유로 제시했으나, 금융위 법령해석심의위원회는 '의사 자문 없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해도 약관 위반이 아니다'라는 해석을 내면서 삼성생명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생명에 유리한 해석까지…'삼성 봐주기' 의혹 심화
금융위가 삼성생명 제재안에 대한 최종 의결을 늦추는 것은 물론, 두 차례 법령해석심의위원회를 열면서 삼성생명 측에 유리한 판단을 내놓자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삼성생명에 대해 특혜를 주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삼성SDS 부당지원 건에 대해 내린 결론을 두고는 금융위 법령해석심의위원회가 앞서 교보생명의 상표권 무상 사용 허용 안건에 대해 보험업법 위반이라 판단한 것과 비교되며 고의적인 삼성 봐주기 행위로 지적됐다.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 금융정의연대는 지난 8일 공동성명을 내고 "한화생명 때와는 달리 삼성생명의 제재안을 확정을 짓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금융위에 '삼성 봐주기'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금융위는 금감원 제재안을 확정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자문기구인 법령해석심의위원회에 넘기며 무책임하게 면피 행위를 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정무위원회 소속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삼성생명을 봐주기 위해 법령해석심의위원회에 법령해석을 의뢰했다고 지적하면서 "금융위가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 역시 "안건 처리가 지연될수록 제재 대상 금융회사의 로비 개연성이 높아지며, 솜방망이 처벌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며 "피해자 보호를 위해 안건을 조속히 처리하고 안건소위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금융위는 현재 심의 중에 있는 제재안인 만큼 법령해석심의위원회의 판단 근거에 대해 밝힐 수 없다면서도, 삼성생명에 대한 특혜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삼성생명 제재안의 최종 의결이 지연되는 데에는 총 7건의 쟁점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과 법리 검토 등에 필요한 시간이 걸리는 것일 뿐 다른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감원이 삼성생명에 대한 종합검사부터 제재심 완료까지 진행하는 데 걸린 시간이 1년 이상이다. 그만큼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며 "양측의 의견 진술, 대심 절차 등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됐을 뿐, 일부로 의결을 지연하거나 늦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정 회사에 대한 봐주기 의혹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삼성생명 제재안에 대한 법령해석심의위원회의 결론이 회사 측의 징계 수위를 낮출 근거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도 일차적으로는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자문기구의 해석이 금융위 최종 의결에 핵심 판단 근거로 작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금융위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최종 결론을 낼 것이다. 금융권 안팎에서 지적하는 내용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만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을 내리는 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