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민간이 아니라 기업 영역 아닌가요?” “광고가 국민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가 있어야 진흥을 할 수 있어요.” 담당 공무원에게 광고산업 진흥의 필요성을 설명하면 이렇게 답변하는 경우가 많다. 순환 보직에 따라 새로 배치받은 공무원일수록 이렇게 말한다. 광고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그가 인지하고 뭔가 진흥 정책을 추진하려고 할 때쯤 되면 다시 자리가 바뀐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부 수립 10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쭉 이런 패턴으로 흘러왔다.
더 이상한 일은 광고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면서도 정부 부처에서는 광고를 놓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진흥 업무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규제 업무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담당한다. 매체에 따라서도 인쇄 광고는 문체부에서, 방송 광고는 방통위에서, 인터넷 모바일 광고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옥외 광고는 행정안전부에서 관장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광고 관련 부처의 일원화를 건의하지만, 각 부처에서는 광고를 꽉 붙잡고 있다. 부처의 이기주의가 광고산업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광고 관련 주무부처가 네 개로 쪼개지면 통합적 관점도 기대하기 어렵고 효율성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광고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광고산업 정책이라고 할 수 없고, 엄밀히 말해서 광고 매체의 플랫폼 정책이었다. 광고는 특정 매체에 싣는 단순한 광고물이 아니라 문화 콘텐츠 성격이 강하다. 영국의 문화경제학자 데이비드 스로스비는 광고를 경제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창조 산업의 주요 콘텐츠로 인식하기를 권고했다. 광고산업은 광고주, 광고회사, 매체사, 광고제작사라는 네 주체로 구성되는 매개 산업이고, 경기와 연동되는 산업이자 인적 자본 집약 산업이다. 공공성 차원에서 정부의 직·간접적인 규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광고는 국민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지만 기업에서는 자사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목적에서 광고를 한다. 기업에서 해야 할 일을 왜 정부가 나서서 진흥해야 하느냐는 의구심 때문에 공무원들은 광고 진흥에 소극적이다. 얼핏 보면 맞는 것 같지만 전적으로 틀린 편견이다. 예컨대, 자녀들의 게임 때문에 속 끓는 학부모가 많은데, 왜 게임산업 진흥을 위해 정부가 그렇게 나서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게임이 소비경제를 창출하는가? 광고산업은 소비경제 창출의 기간산업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인정한다.
모든 산업 영역이 순기능을 발휘하고 발전하려면 규모에 적합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한데도, 광고산업 분야는 아직까지 기본적인 법 제도가 없어 법률에 기반한 체계적인 정책 실현이 어려운 상황이다. 광고의 취업 유발 효과는 문화 콘텐츠산업 중 1위, 생산 유발 효과는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그럼에도 게임과 만화를 비롯한 다른 콘텐츠 분야에는 진흥법이 있지만, 광고 분야는 산업 진흥에 대한 근거 법이 없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제라도 가칭 ‘광고산업진흥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
광고산업진흥법에서는 광고산업 진흥에 필요한 광고 인력 양성, 일자리 창출, 디지털 기술 지원, 광고의 저변 확대, 거래 환경 개선, 소비자 권익보호, 광고 관련 기구 통합, 국제 교류와 남북교류 같은 내용을 명시해야 한다. 그리고 법률에 따라 광고 진흥 업무를 수행할 가칭 ‘광고산업진흥원’도 설립해야 한다. 이 기구에서는 광고산업 지속 성장에 필요한 연구, 조사, 개발 업무를 비롯해 미래 광고 환경을 개척하는 광고산업의 발전소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광고 단체를 대변하는 한국광고총연합회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이했다. 한국은 2023년 제33차 아시아광고대회(Adasia) 서울대회를 앞두고 있다. 한국 광고산업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광고의 본질이 ‘널리 알리는 목적’에서 ‘폭넓게 모이게 하는 목적’으로 변하고 디지털 미디어가 광고의 생태계를 바꾸고 있는 상황에서, 광고산업진흥법을 시급히 제정해야 한다. 나아가 광고산업진흥원이 설립되고 광고 업무를 주관할 정부의 독임(獨任) 부처가 정해지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광고산업이 날개를 달고 글로벌 광고계를 향해 훨훨 날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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