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한국인 남성이 무작정 터번을 쓰고 인도의 한 시크교 사원에 들어간다. 종교도 없고, 인도어도 모르는 남성이지만 현지인 못지않은 친근함을 앞세워 무리에 녹아든다. 사원에서 1박2일을 보내는 동안 남성이 쓴 돈은 콜라값 100원. 남성은 “숙식을 무료로 제공해주는 이런 사원에서 특별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며 20분의 영상을 마무리한다.
지난 1일 기준 25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한 이 영상의 주인공은 여행전문 유튜버 ‘빠니보틀(본명 박재한·34)’이다. 구독자는 84만 명. 국내 대표 여행 유튜버로 꼽힌다. 그의 여행 철학은 단순하다. “좋은 리조트에서 비싼 걸 먹고, 아름다운 걸 보는 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터번을 쓰고 인도 사원에서 하루 동안 현지인처럼 지내는 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이죠.”
철학이 존재하는 만큼 그의 여행 일정에는 일관성이 있다. 인도 사원에서 1박2일간 무일푼으로 지내기, 부랑자가 많기로 소문 난 슬로바키아의 위험한 마을 탐방,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아이슬란드에서 ‘공짜 온천’을 찾는 여행…. 누군가 한번쯤 생각해봤지만 실제로는 엄두가 나지 않아 못한 것. 그는 그런 것들을 한다.
이 당돌함에 이끌린 그의 구독자는 대부분 호기심이 많으며 진취적인 2030세대다. ‘틀에 박힌 여행’보다 자율성이 높고 독창적인 여행을 선호한다. “내가 올린 영상에 수십만 명의 사람이 공감해준다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처음부터 여행 유튜버의 꿈을 꾼 것은 아니다. 그는 한때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반복적인 회사 일상에 지루함을 느껴 퇴사를 택하고 2019년 초 여행 유튜브를 개설했다. 이후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고급스러움과 거리가 먼 여행길’에 올랐다. 방문한 지역의 가장 허름한 숙소에서 1박을 치르는 여행, 그러다 잘 곳이 없으면 캠핑으로 해결하는 여행, 식사 포함 하루 비용이 1만원 미만인 여행 등이다. 방문 지역도 인도, 네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여행 인프라가 부족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은 빠니보틀 특유의 ‘현실적 영상’에 매료됐다. 수백 일씩 반복되는 힘들고 고된 일정을 담담하고 꾸밈없이 보여주는 소탈함은 곧 그의 무기가 됐다. “여행길이 갈수록 힘들지 않았습니다. 전부 제가 원한 일정이고, 이걸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다 위기가 찾아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지난해 봄,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행을 시작한 지 1년3개월 만의 일이다.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유튜버 경험으로 쌓은 콘텐츠 제작 역량을 다른 곳에 쏟기로 했다. 중소기업을 다룬 웹드라마 ‘좋좋소’다.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유튜버 ‘이과장’의 제안을 받고 중소기업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드라마에 담기로 했다. “중소기업판 ‘미생’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30대 직장인으로부터 처절한 공감을 얻어내는 게 목표였죠.“
5명의 제작진으로 시작한 좋좋소는 1회부터 대박이 났다. 목표 조회수였던 15만 회를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달성했다. SNS에서 입소문이 돌며 순식간에 ‘뜨는 콘텐츠’가 됐다. 지난 2월에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왓챠’에 진출해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좋좋소의 인기 요인은 ‘있을 만한 이야기의 집합체’라는 점에 있다. 면접 자리에서 지원자에게 노래 장기자랑을 시키는 대표, 전혀 체계화돼 있지 않은 연봉협상 과정, 주먹구구 워크숍과 같은 에피소드는 실제 중소기업 재직자로 하여금 “나도 저랬는데” 하는 공감대를 자아낸다. “큰 수익을 기대하고 시작한 콘텐츠가 아닌데, 많은 분이 좋아해줬습니다. 소소하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런 콘텐츠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최근 또 다른 여행길에 올랐다. 지난달 출국해 미국을 시작으로 ‘두 번째 세계여행’을 진행 중이다. 콘셉트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구독자가 궁금해하는 곳’을 집중적으로 방문하는 게 목표다. 실제로 로스앤젤레스에서 ‘할리우드 파파라치 체험’을 해보기도 하고, 접근금지 구역인 미국 ‘네바다 51구역’을 방문하기도 했다.
“1인 콘텐츠 제작자는 때때로 외로운 직업입니다. 콘텐츠를 두고 고민하는 일도, 부족함을 메꾸는 일도 오롯한 혼자만의 몫이죠.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상을 영상에 담아 남과 공유하는 일’이 즐거워 그만둘 생각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최고의 역할입니다.”
윤희은 기자/사진=김병언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