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된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한국 증시도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이 자국 테크 기업들에 대한 고강도 제재를 이어간 영향으로 중국 증시가 급락하자, 장초반 강보합세를 보이던 한국 증시의 양대 시장 모두 하락 전환해 코스피는 1% 가까운 낙폭을 기록했다.
26일 코스피는 전거래일 대비 29.47포인트(0.91%) 하락한 3224.95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0.36% 오른 3265.99로 거래를 시작했지만, 이내 하락전환해 중국 증시가 개장한 오전 10시30분 이후엔 꾸준히 낙폭을 키웠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홍콩 증시에 상장된 텐센트, 알리바바, 알리건강, 중국헝다 등이 5~8% 급락했다”며 “홍콩 증시 뿐만 아니라 중국 증시에도 영향을 줘 상해종합지수도 2% 넘게 급락하는 등 대부분의 지수가 약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계속 강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중국 정부는 미 증시에 상장한 차량공유업체 디디추싱에 대한 안보조사를 한 뒤 이달 6일 앱스토어에서 디디추싱 앱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24일에는 사교육비 부담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사교육 업체들의 이윤 추구를 제한할 수 있는 지침을 발표했다. 이 영향으로 안 그래도 내리막을 타고 있던 중국 온라인 교육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고점 대비 10분의1 토막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날 개최된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도 날선 발언이 오갔다. 셰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텐진에서 열린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과의 회담에서 “중미 관계는 교착 상태에 빠졌으며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미국의 일부 인사가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회담에 앞서 중국 정부는 지난 23일 반외국제재법을 처음 동원해 미국의 윌버 로스 전 상무장관을 비롯해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홍콩민주주의위원회 등의 인사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중국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미 측은 이른바 홍콩 기업경보라는 것을 만들어내 홍콩의 기업 환경을 근거 없이 더럽히고 불법적으로 홍콩 내 중국 당국자들을 제재했다”며 “이런 조치들은 국제관계의 근본 원칙과 국제법을 침해하는 것이며 중국의 내정에 심각하게 간섭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한국 증시에 참여하는 외국인과 기관은 대규모 매도에 나섰다. 이날 외국인과 기관은 코스피에서 각각 3759억원 어치와 3366억원 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이에 더해 외국인은 코스피200 선물도 9151계약 순매도했다. 개인이 7213억원 어치 주식을 샀지만 지수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코스피 주요 업종 중에서는 의료정밀만 올랐다. 반면 기계, 건설업, 보험, 증권, 비금속광물, 금융업, 운수창고, 운송장비 등은 1% 이상 하락했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도 포스코(POSCO)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제외하고 모두 하락했다. 특히 현대모비스, 삼성SDI, LG전자, 셀트리온, LG화학, 카카오, SK하이닉스 등의 낙폭이 컸다.
코스닥은 전일 대비 7.87포인트(0.75%) 하락한 1047.63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닥은 개장 직후 장중 연고점을 경신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빠지며 오후 들어 하락전환한 뒤 급락했다. 이 시장에서는 개인이 2316억원 어치를 산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1820억원 어치와 379억원 어치를 팔았다.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종목 중에서는 에코프로비엠, CJ ENM, 엘앤에프, 에이치엘비, 리노공업 등은 올랐다. 반면 카카오게임즈는 5% 이상 하락했으며, 휴젤, 알테오젠 등도 3%대로 빠졌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 대비 4.20원(0.36%) 오른 1155원에 마감됐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