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개발국의 산업화에는 여러 요소가 필요하지만 우수 인재 확보만큼 중요한 것도 드물다. ‘한강의 기적’은 공무원으로 대표되는 뛰어난 인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그런 인재를 공급해온 통로는 누가 뭐래도 고시(高試)였다.
이렇다 할 산업도, 제대로 된 일자리도 거의 없던 시절 고시는 가문 전체를 벌떡 일으켜 세우는 말 그대로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지름길이자 초고속 계층 이동 사다리였다. 그랬던 고시가 퇴색하고 있다. 제도 자체가 많이 변하기도 했고 합격자의 만족감 역시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1947년 ‘조선변호사 시험’이란 이름으로 시작됐던 사법고시는 로스쿨이 생기면서 2017년 59회를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판검사 경력이 없는 요즘 로스쿨 출신 젊은 변호사 중에는 로펌에 취업했다가도 과중한 업무 등에 넌더리를 내며, ‘워라밸’을 찾아 민간기업 사내변호사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법고시 합격 후 젊은 나이에 ‘영감’ 소리를 듣던 것은 이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일이 되고 있다.
1949년 ‘고등고시 행정과’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행정고시는 2011년부터 ‘5급 공채’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명맥은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5급 공채에 합격한 젊은 사무관의 퇴직이 해마다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애써 만든 정책이 정치논리에 의해 하루아침에 뒤집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데다, 급여는 민간 전문직에 비해 적고 공무원연금도 줄어드는 등 비전도 보람도 없어 공직을 떠난다는 것이다.
1968년 시작된 외무고시는 2013년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으로 대체돼 외교관 양성 루트가 되고 있지만 합격자의 자존감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요즘엔 해외 근무가 큰 메리트도 아닌 데다 경제의 중심이 민간으로 넘어가면서 적잖은 인원이 기업으로 옮기는 추세다.
‘고시의 몰락’은 관(官)에서 민(民)으로의 권력 이동이라는 차원에서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젊은 관료 엘리트의 이탈은 국가적 손실이라는 지적도 있다. 요즘처럼 소신 있는 관료가 드물고 전문성보다는 포퓰리즘이 정책을 좌우하는 시기에는 더 그렇다. 신산업을 앞세운 민간이 블랙홀처럼 우수 인재를 빨아들이는 이때, 산업화에는 성공했지만 선진국 정착은 하지 못한 한국엔 어떤 인재가 필요할까.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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