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제국’ 미국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에 34조원(300억달러)짜리 인수합병(M&A) 승부수를 던졌다. 세계 4위 파운드리업체 글로벌파운드리(GF) 인수를 추진 중이다. 시장 진출을 선언한 지 4개월 만이다. 글로벌파운드리의 사업 노하우와 고객사를 흡수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세계 1위 파운드리업체 대만 TSMC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일본 공장 설립을 통해 현지 고객사 물량 확보와 기술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TSMC와 인텔 사이에 낀 삼성전자엔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수 성사되면 ‘윈윈’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현지시간) “인텔이 반도체 제조 능력 확대를 위해 글로벌파운드리 인수 협상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거래가 성사되면 인수 금액은 300억달러(약 34조3000억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글로벌파운드리는 “인텔과 어떤 협상도 하고 있지 않다”고 공식 부인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인텔이 글로벌파운드리의 최대주주인 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 무바달라와 협상 중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도체업계는 인텔의 글로벌파운드리 인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두 업체에 ‘윈윈’이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인텔 기술력에 파운드리 노하우 결합
인텔으로선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펫 갤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월 ‘종합반도체기업(IDM) 2.0’이란 미래 전략을 공개하며 “파운드리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인텔은 200억달러(약 22조8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2024년까지 새로운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이런 계획에도 불구하고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을 잘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제기됐다. 강력한 기술 경쟁력을 무기로 고객사의 제품 개발 스케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슈퍼갑’ 인텔이 ‘서비스 정신’이 중요한 파운드리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였다.
인텔이 글로벌파운드리를 인수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글로벌파운드리는 4~5년 전만 해도 TSMC, 삼성전자 등과 함께 ‘파운드리 3강’으로 꼽혔을 정도로 업력이 만만치 않다. 2018년 선폭(반도체 회로 폭) 10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공정 진입 포기를 선언한 이후 2류(second tier)로 분류되고 있지만, 꾸준히 시장 3~4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글로벌파운드리는 특히 12㎚, 22㎚ 등 전통 공정 중 첨단 기술로 분류되는 시장에선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AMD 퀄컴 브로드컴 등 중앙처리장치(CPU), 통신칩 등을 설계하는 팹리스와 NXP 등 자동차용 칩업체 등 고객사도 150개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인텔이 글로벌파운드리를 인수하면 시장에 안착하는 동시에 7㎚ 이하 첨단 기술개발에도 주력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TSMC는 일본 공장 건설 추진
세계 1위 TSMC의 최근 움직임도 주목된다. 니혼게이자이, 아사히 등에 따르면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열린 실적 설명회에서 일본 내 파운드리 공장 건설 가능성과 관련해 “배제하지 않는다”며 “투자 리스크(위험)를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TSMC가 공식적으로 일본 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인정한 것은 처음이라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다만 마크 류 TSMC 회장은 이날 “결정을 공표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고 고객 수요와 생산효율, 비용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일본 정부는 전 세계적인 반도체 기술 패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자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소니, 르네사스 등 주요 파운드리 고객사를 활용해 TSMC 등의 공장 유치에 나섰다.
‘2030년 파운드리 1위’ 목표…삼성 ‘악재’
2030년 파운드리 세계 1위 달성을 목표로 내건 삼성전자엔 전방위적으로 사업을 확장 중인 TSMC와 인텔의 공세가 ‘악재’일 수밖에 없다. 삼성이 TSMC와 인텔이라는 글로벌 반도체 왕좌 사이에 끼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M&A 성사로 글로벌파운드리 업력에 인텔의 기술력이 결합하면 강력한 파운드리 경쟁자가 등장하게 된다. TSMC에 일본 시장을 완전히 내줄 가능성도 커졌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TSMC의 일본 진출은 고객사 확보에 더해 일본의 최첨단 후공정 기술을 습득하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라며 “후공정 기술 고도화에 주력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이수빈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