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블랙록 ESG 혁명
CEO님께
블랙록은 고객들에 대한 신탁의무를 지니며, 고객의 장기 목표 달성을 위한 투자를 도와드립니다. 블랙록에서 운용되는 대부분의 자산은 은퇴 준비 자금으로 교사, 소방관, 의사, 사업가 등 연금에 가입한 개인투자자의 자금입니다. 운용자금은 블랙록의 것이 아닌 투자자의 것입니다. 고객으로부터 받는 신뢰, 그리고 투자자와 기업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은 저희가 고객을 대변한다는 큰 책임을 부여합니다.
이 때문에 저는 매년 최고경영자(CEO) 님께 서한을 전하며, 장기적인 가치 창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자산 운용, 장기 전략, 목적, 그리고 기후변화 등 각종 이슈를 짚어보고 있습니다. 귀사의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위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 귀사의 주주이기도 한 당사의 고객들도 수혜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오랫동안 믿어 왔습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우리 사회의 취약성을 뚜렷이 상기시키는 실존적 위기를 느끼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기후변화라는 글로벌 위협에 더 강력히 맞서게 만들었고, 팬데믹 위기가 그러했듯 기후변화 위기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보건 위기나 환경 위기를 불문하고, 이와 같은 위기에는 전 세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구조적 변화의 가속화
지난해 1월, 저는 기후변화 리스크가 곧 투자 리스크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증권 가치에 기후변화 리스크가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자본 배분의 근본적인 재편을 촉발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팬데믹이 발생했습니다. 3월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로 인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분산될 것이라는 통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자본 배분의 재편은 제 예상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2020년 1월에서 11월까지 뮤추얼펀드 및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자들은 전 세계 지속 가능성 자산에 2880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이는 2019년 전체 규모 대비 96% 증가한 규모입니다. 이 변화는 장기적이면서도 빠르게 진행될 전환의 시작이라고 확신합니다. 수년에 걸쳐 진행될 것이고 모든 자산의 가격을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이제 모두가 기후변화 리스크가 곧 투자 리스크라는 사실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후변화 대응이 역사적으로 손꼽힐 투자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러한 전환의 핵심은 지속 가능성 투자 옵션의 가용성과 경제성 확대에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후변화에 대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은 정말 대형 투자자에게나 가능한 수고로운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속 가능성 지수가 만들어지면서 기후변화 리스크에 충실히 대비한 기업을 향한 대규모 자본 유입이 물살을 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변화의 정점에 있습니다. 자산운용사는 기술의 발전과 양질의 데이터를 통해 훨씬 더 광범위한 투자자에게, 한때는 자산가들에게만 제공됐던, 맞춤형 인덱스 포트폴리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지속 가능성 기업으로 투자를 집중하는 투자자가 늘어나면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구조적 변화는 한층 더 가속화될 것입니다. 이는, 자본 배분 방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모든 기업의 경영진과 이사회는 자사 주식에 미칠 영향을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넷제로 전환의 기회
모든 기업의 사업모델은 넷제로(net zero) 경제를 향한 전환으로 인해 많은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넷제로 경제는 2050년까지 대기 중 이산화탄소 제거량과 배출량이 상쇄돼 '제로(0)'가 되는 것으로, 지구 온난화를 2도 미만으로 제한하기 위해 과학적으로 산출된 기준입니다. 전환 속도가 빨라지는 가운데 탄탄한 장기 전략과 넷제로 전환의 명확한 대응 계획을 세운 기업은 고객, 정책결정권자, 직원, 주주 등 이해관계자에게 세계적 전환을 잘 헤쳐나갈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줌으로써 차별화에 성공할 것입니다. 하지만 대응이 느린 기업은 비즈니스와 밸류에이션 차원에서 난관을 마주할 것입니다. 다가오는 극적인 변화에서 과연 사업모델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이해관계자들이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넷제로 달성을 위해서는 경제 시스템 전체가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학자들은 2100년까지의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평균 대비 2도보다 훨씬 미만'으로 억제한다는 파리기후변화협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2050년 동안 매년 8~10% 감축해야만 하고, 그렇게 하면 2050년경에 '넷제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경제는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이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월드와 같은 대형 지수의 탄소 집중도에도 반영돼 있습니다. 이들은 현재 기준으로는 3도 이상의 온도 상승을 예측합니다.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공정하고 공평하며 사람들의 생계를 보호하는 성공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수십 년에 걸친 기술 혁신과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모든 정부의 리더십, 협력, 지원과 민간 부문의 협력이 맞물려야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며 번영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취약한 지역사회와 개발도상국은 이미 기후변화로 인한 최악의 물리적 피해에 노출돼 있으며, 전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경제적 충격을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반드시 필요한 긴급한 변화를, 취약계층의 이중 부담을 악화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전환은 필연적으로 복잡하며 힘겨운 과정이겠지만, 더 탄력적인 경제를 구축해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자본주의의 미래와 경제의 미래에 대해 매우 낙관적입니다. 이때 에너지 전환은 걸림돌이 아닌 순풍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물론, 각 기업이 기후변화의 물리적 위협과 글로벌 경제의 넷제로 전환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파악해야만 투자자도 전환에 대비하는 포트폴리오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블랙록과 같은 운용사에 해당 영역의 데이터와 분석 기능을 빠르게 발전시키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당사는 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데이터와 공시가 중요한 이유
지속 가능성 리스크를 평가하려면 투자자가 일관성 있는 양질의 주요 공개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는 모든 기업에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 태스크포스(TCFD) 및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의 권장사항에 따른 보고를 요청 드린 바 있습니다. 이들은 보다 광범위한 실질 지속 가능성 요인들을 반영합니다. 지난 한 해의 진전은 대단히 고무적이었습니다. SASB 공시는 363% 증가했으며, 1700곳 이상에서 TCFD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습니다(블랙록에서도 자체적인 TCFD 및 SASB 보고서를 지난해에 처음으로 발행했습니다).
TCFD 보고서는 글로벌 기준으로, 투자자는 이를 통해 기업이 직면한 중요 기후 관련 리스크와 해당 기업의 리스크 관리 방법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전환이 모든 기업의 성장 전망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감안했을 때, 기업에서는 각 비즈니스 모델이 넷제로 경제에서 성공적으로 기능하게 될 계획을 공개할 것을 당사는 기대합니다. 넷제로 경제는 지구 온난화를 2도 미만으로 제한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넷제로로 만드는 세계적 목표입니다. 귀사에서도 해당 계획이 장기 전략에 어떻게 반영됐고 이사회의 검토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공시해주실 것으로 당사는 기대합니다.
공시가 번거로울 수 있으며 보고 기준이 다양해 기업 운영의 복잡성이 더 심화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당사는 단일 글로벌 기준의 확립을 강력히 지지하며, 이를 통해 투자자도 장기적인 수익률 목표 달성에 부합하는 더 적절한 결정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지속 가능성 공시의 개선은 기업뿐만 아니라 투자자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만큼, 규제당국의 시행 명령을 기다리기보다는 기업 차원에서 신속한 공시가 이루어지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전 세계적으로 단일화된 표준을 향해 움직이는 동안 블랙록은 지속적으로 TCFD와 SASB를 따르는 보고를 지지합니다). 또한 TCFD 보고가 상장 기업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공시가 진정한 효과를 내고 사회가 진정으로 변화하기를 갈망한다면, 대규모 비상장 기업도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지속 가능성, 그리고 이해관계자와의 더 긴밀한 관계가 수익률 향상을 견인
2018년에 저는 모든 기업이 사업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것이 주주, 직원, 고객, 주변 지역사회를 비롯한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어떤 혜택을 주는지 명확히 설명하도록 촉구하는 서한을 썼습니다. 2020년 한 해 동안 더 나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프로파일을 지니고 목적을 가진 기업이 동종 여타 기업보다 얼마나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2020년에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지속 가능성 지수 그룹의 81%가 각각의 상위(parent) 벤치마크보다 높은 수익률을 거뒀습니다. 이와 같은 초과 성과는 1분기의 경기 후퇴 시기에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이전의 경기 후퇴 기간에 확인됐던 지속 가능성 펀드의 탄력성이 다시 한 번 입증됐습니다. 또한 더 광범위하며 다양한 지속 가능성 투자는 2020년에 목격한 것처럼 이 펀드들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을 계속해서 끌어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시장 전반의 ESG 지수가 비ESG 지수의 수익률을 상회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동차부터 은행, 유틸리티 등에 이르기까지 산업 내에서 또 다른 분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ESG 프로파일이 더 우수한 기업이 '지속 가능성 프리미엄'을 누리며, 다른 기업보다 좋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이해관계자와 긴밀히 연계해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목적을 세워 행동하는 기업은 다양한 변화를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습니다. 위험에 처한 이해관계자를 무시하고 신뢰를 얻지 못한 기업은, 특히 기업의 가치 반영을 기대하는 젊은 세대가 점점 더 늘어나면서 고객과 인재 유치에 고전하게 될 것입니다. 귀사에서 고객, 직원, 지역사회에 가치를 제공하는 목적을 더 많이 드러낼수록 주주에게는 장기적이며 지속적인 이익이 제공될 것입니다.
인종과 민족에 대한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다양하겠지만, 전 세계의 기업들이 최고의 인재 구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인재 전략을 세우고 있을 것입니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행하실 때는 인재 전략에 지역별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강화할 수 있는 장기 계획을 완전히 반영하는 내용을 공시에 포함하도록 요청 드립니다. 당사에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인종 차별, 경제적 불평등, 지역사회 참여에 대한 이슈는 종종 ESG 논의에서 '사회(S)' 문제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문제별로 구분 지어 뚜렷한 선을 긋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는 이미 전 세계 저소득층 지역사회에 특히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환경(E) 문제일까요, 아니면 사회(S) 문제일까요. 중요한 것은 문제를 어떻게 분류하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문제를 파악하도록 돕는 정보이고, 각각의 문제가 서로 영향을 미치는 방식입니다. 데이터와 공시의 개선을 통해 환경문제와 사회문제 사이의 깊은 상호의존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투자 기업 CEO에 전하는 2021년 연례 서한)
정리=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