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토착화…국산백신 필수
전문가들이 말하는 백신 대책은 3단계다.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는 게 1단계고, 국산 백신을 개발해 백신을 구걸하지 않도록 하는 게 그다음이다. 궁극적으로는 어떤 감염병이 생겨도 곧바로 백신을 만들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유지할 수 있어야 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한 나라가 된다.한국은 급한 불은 껐다. 5월 말 현재 1억9200만 회분(약 9900만 명분)의 백신을 확보했고, 1차 백신 접종자가 전 국민의 30%에 육박한다. 아스트라제네카(AZ) 등 해외 백신 4종을 위탁 생산 중이거나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백신 확보 ‘비상채널’은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코로나 백신은 접종 후 중화항체 지속 기간이 길어야 6~10개월이다. 계속 백신을 맞아야 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확인된 변이 바이러스만 29종에 달한다. 백신 원천기술 없이는 국민 건강을 얘기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대통령도, 여당 대표도 입만 열면 ‘백신 주권’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장에선 말뿐이라는 불만이 많다. 예산도 없고, 지원제도도 엉망이라는 것이다. 올해 코로나 치료제·백신 개발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은 1314억원이 전부다. 556조원 규모의 ‘초슈퍼 예산’을 짰지만 백신 주권 관련 예산은 보이지도 않는다. 지난해 예산(940억원)을 합해도 2254억원에 불과하다. 미국이 코로나 초기에 ‘백신 개발 초고속작전(Operation Warp Speed)’을 통해 총 13조원, 개발업체당 1조~4조원을 쏟아부은 것과 대비된다. 통상 10년 걸리는 백신 개발 기간을 1년으로 줄인 비결이다.
지원 까다로워 개발 '게걸음'
한국에선 셀리드 등 5개 업체가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지원금은 업체당 10억~90억원이 고작이다. 그나마 지원을 받으려면 경쟁도 심하고 조건도 까다롭다. 왜 그럴까. ‘문책 트라우마’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백신 개발을 지원했다가 문제가 생겨 책임을 추궁받은 경험이 있다. 신종플루(2009년) 때도, 메르스(2015년) 때도 그랬다. 국회가 지난 2월 공무원 면책조항을 넣은 ‘백신 선구매법’(감염병예방법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일선에선 여전히 요지부동이다.국산 백신 개발은 국민 생명과 직결된 핵심 과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지금이라도 백신 개발 예산을 충분히 편성하고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 여당과 청와대는 재난지원금 등으로 33조~35조원 규모의 2차 추경 편성을 검토 중이다. 대부분 ‘선심성’ 예산이다. 발상을 바꿔 추경의 10%만 백신·치료제 개발과 관련 인력 양성 등에 투자해보면 어떨까.
또 대통령이 나서 해당 공무원과 개발업체에 실패해도 좋으니 끝까지 뛰어 보라고,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독려해주면 어떨까. 당장은 백신 개발에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으로 다음엔 더 쉽게 개발에 나설 수 있게 말이다. 백신 주권은 말로만 확보되는 게 아니다. 과감한 실천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