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공화 양당의 초당파 상원의원들이 ‘증세 없는 인프라 투자’ 방안에 합의했다. 인프라 투자 규모는 5~8년간 1조달러(약 1110조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초당파 의원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백악관과 공화당의 인프라 협상이 결렬된 직후 이뤄진 것으로, 앞으로 백악관과 민주·공화 양당 지도부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민주·공화 초당파 상원의원 10명은 10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증세를 수반하지 않는 인프라 투자 방안에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논의에는 민주당 중도파로 상원에서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조 맨친 의원과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밋 롬니 의원 등 각 당에서 5명씩 참여했다.
초당파 의원들은 구체적인 합의액은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WP)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들이 합의한 인프라 투자 규모는 5년간 9740억달러, 8년간 1조2000억달러가량으로 투자 대상은 도로, 교량, 수도관, 인터넷망 등 ‘핵심적인 물적 인프라’라고 보도했다.
인프라 투자 방안은 미 정치권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당초 8년간 2조3000억달러를 제안했다가 공화당이 반발하자 1조7000억달러로 규모를 낮춘 데 이어 공화당과의 협상 과정에서 최근 1조달러까지 금액을 내렸다. 다만 1조달러 거의 전액을 신규 예산으로 채워야 한다는 게 백악관의 생각이다.
반면 공화당은 당초 9280억달러를 제안했다가 바이든 대통령과의 협상 과정에서 이를 9780억달러로 높여 총액에선 엇비슷한 수치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 중 신규 예산 투입은 3000억달러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코로나19 예산을 비롯해 다른 예산을 전용해 쓰겠다는 구상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은 증세 방안을 놓고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초 법인세율을 21%에서 28%로 올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후 공화당의 반발 등을 감안해 25%로 낮춘 데 이어 최근에는 아예 법인세 인상을 보류할 수 있다는 카드도 내놨다. 대신 법인세 최저세율 15% 도입, 고소득층 증세, 자본이득세 인상 등 다른 증세 방안은 고수했다. 하지만 공화당은 증세를 거부하고 있다.
인프라 범위에서도 공화당은 도로, 교량, 수도 등 전통적 인프라에 초점을 맞췄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뿐만 아니라 전기차 충전소, 교육·복지 시설 등 광의의 인프라 확충을 고수했다.
이 같은 차이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의 협상은 결렬됐다. 이런 가운데 초당파 의원들은 8년간 1조2000억달러를 제안하면서 이 중 5790억달러를 신규 예산으로 채우겠다는 절충안을 낸 것이다. 하지만 법인세 인상과 고소득층 증세 등을 배제하고 핵심 인프라에 초점을 맞춘 건 공화당과 가까운 것으로 평가된다.
관건은 초당파안이 실제로 초당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다. 현재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을 차지한 상원 구도를 감안한다면 초당파안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이 법안을 단독 처리하기 위해선 ‘이탈표’를 모두 틀어막고 상원의장을 겸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해야 하는데 민주당 상원의원 5명이 초당파안에 가세한 만큼 이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당파안에 대해 민주당 진보진영이 반대하거나 공화당 의원들이 충분히 가세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WP는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초당파안과 민주당 단독 처리안 모두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