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포터2 일렉트릭, 기아의 봉고3 EV 등 불티나게 판매되고 있는 전기화물차가 암초를 만났다. 정부의 전기화물차 구매 보조금이 바닥을 드러낸 가운데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까지 빚어지게 됐다. 여기에 국회가 전기화물차에 한해 새 영업용 번호판을 지급하던 정책을 없던 일로 되돌리면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전기화물차 보조금 벌써 바닥 드러내
6일 '저공해차 통합누리집'에 따르면 상당수 지방자치단체가 전기화물차 보조금 지원 접수를 조기 마감했다. 지원 물량보다 접수 대수가 훨씬 많은 탓이다. 서울시는 올해 전기화물차 보조금 지원 물량을 1600대(일반)로 잡았는데, 이미 1747대가 접수됐다. 추가 신청자는 모두 대기자 신세가 된다. 부산시도 마찬가지다. 798대(일반) 지원에 856대가 몰렸다.정부는 올해 전기화물차 보조금 지원 물량을 2만5000대로 잡았다. 지난해 1만3000대보다 두 배 가까이 늘렸다. 그럼에도 보조금이 벌써 바닥을 드러낸 것은 친환경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높아진 데 따른 현상으로 풀이된다.
정부 및 지자체 보조금이 총 2400만원에 달하는 것도 수요 폭증의 원인이다. 정부 보조금 1600만원에 지자체 보조금 800만원(서울시 기준)을 더하면 4000만원짜리 포터2 일렉트릭을 1600만원에 살 수 있다. 2000만원짜리 일반 포터2보다 싼 셈이다.
포터2 일렉트릭은 올 4월까지 5988대 판매됐다. 작년 동기 대비 123.1% 급증했다. 봉고3 EV는 같은 기간 3582대 팔렸다. 역시 작년보다 185.2% 늘었다. 보조금이 없다면 판매 타격은 불가피하다. 정부 및 지자체의 추가경정예산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 공급 부족에 울산공장 멈춰
포터2 일렉트릭은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까지 빚어지게 됐다. 현대차 울산4공장 포터 생산라인은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로 6~7일 휴업한다. 전방 카메라 및 클러스터 반도체 소자 공급 부족에 따른 것이다.전방 카메라에 들어가는 이미지센서는 미국 업체 온세미가 생산한다. 이후 대만 패키징업체 킹팩과 독일 ZF, 현대모비스 등을 거쳐 현대차로 납품된다. 업계 관계자는 “온세미가 미국 업체에 우선적으로 부품을 전달하기 위해 현대차에 납품하는 이미지센서 공급량을 일방적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차량용 클러스터 반도체는 일본 르네사스가 공급한다. 그러나 르네사스 공장에서 지난 3월 큰 화재가 발생하면서 공급 차질이 빚어졌다. 르네사스는 지난달 생산을 재개했지만, 화재 이전 수준으로 복구하는 데에는 4~5개월가량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대차는 5월이 가장 큰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수급 상황에 따라 추가 휴업 우려도 적지 않다.
전기화물차에 신규 영업용 번호판 금지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국회가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을 개정, 내년 4월부터 사업용 친환경 화물차에 신규 허가를 내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개정 화물차법은 전기화물차에 대한 운수업 허가를 금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종전 화물차법은 사업용 화물차 과잉 공급을 막기 위해 신규 허가를 금지했지만, 2018년 11월부터 1.5t 이하 전기차를 사용하는 경우 허가를 내줬다. 경유차를 감축해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서다.국회의원들이 화물차법을 개정한 이유는 '사업용 전기화물차가 늘면 영세 운송업자의 생계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업용 전기화물차가 지난해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작년 말 기준 사업용 전기화물차는 2561대로, 전년(26대)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1월 포터2 일렉트릭과 봉고3 EV가 출시되면서다. 그러나 사업용 전기화물차 비중은 전체 사업용 화물차(42만5252대)의 0.6%에 불과하다.
국회의원들의 속내는 기득권을 가진 기존 사업자들의 ‘표’ 때문이라는 게 업계 지적이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2004년부터 화물차 운수업 허가가 막히면서 영업용 번호판 가격이 3000만원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영세 화물 운송업자를 내세우지만, 그 뒤엔 40만 가입자의 민주노총 화물연대가 있다.
김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