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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칼럼] 민간외교로 백신 확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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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미국과의 백신 외교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있다. 호란(虎亂)으로 백성이 고통받는데 정작 호랑이 잡을 포수는 옥에 가두고, 벼슬아치들이 호랑이 잡겠다고 설치고 있다. 지금은 정부가 나서면 될 일도 안 된다. 워싱턴은 ‘문스 거번먼트(Moon’s government)와 백신 이야기를 할 생각이 별로 없다.

국방물자생산법으로 백신 수출을 통제하는 미국은 백신 협력을 안보 이슈로 보고, 반중(反中) 쿼드(Quad) 국가인 일본, 호주, 인도와는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쿼드에 참여도 안 하고 베이징과 워싱턴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미국이 원하는 반중전선에 화답하지 않는 문재인 정부에 백신을 줄 마음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미국 백신을 잡을 포수는 미국에 대해 상당한 협상력을 가진 우리 기업 ‘빅4’, 삼성 LG SK 그리고 현대자동차 그룹의 총수들이다. 백신 자국우선주의를 고집하는 백악관을 움직이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임기가 1년도 안 남은 문재인 정부는 백악관에 줄 것이 없다. 하지만 한국의 빅4는 미국 민주당 정부가 절실히 갈망하는 반도체 자립과 친환경차산업에서 결정적 카드를 쥐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 자립을 달성하려면 수입하던 반도체를 미국 내에서 생산해야 하는데, 미국 기업엔 결정적인 아킬레스건이 있다. 반도체 설계·장비 기술에선 앞섰지만 생산 노하우와 핵심 기술 인력이 빈약하다. 오죽하면 지난 12일 백악관 반도체 대책회의에서 미 대통령이 웨이퍼를 흔들며 “미국에 투자해달라”고 18번이나 호소했겠는가. 세계에서 딱 19개 기업만 불렀는데 외국 기업으론 대만의 TSMC와 삼성전자가 참석했다.

회의 직후 TSMC는 애리조나 공장에 1000여 명의 기술 인력을 파견하겠다고 통 크게 화답했다. 그런데 지금 삼성이 백악관의 애를 바짝 태우고 있다. 20조원을 투자해 해외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는데 어디에다 지을지가 오리무중이다. 기존 공장이 있는 텍사스와 함께 애리조나, 뉴욕주가 치열한 ‘삼성 모셔오기’ 경쟁을 하고 있다. 물론 산시성에 삼성 반도체 공장을 가진 베이징도 끈질기게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만약 삼성이 중국 쪽으로 기운다면 미국엔 큰 타격이다.

또 대선 공약인 친환경차산업을 위해선 자동차 배터리 공장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도 한국 기업의 투자가 절실하다. LG그룹이 기존 미시간 공장에 이어 GM과 오하이오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SK그룹도 조지아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는데 LG와의 영업권 침해 소송으로 하마터면 공장 건설이 중단될 뻔했다. 백악관이 팔 걷고 나서 화해를 권유했고, 극적으로 합의했을 때 미 대통령이 “공약 이행을 향한 긍정적 걸음”이라고 하며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었다. 친환경차 강자인 현대차도 차세대 전기차의 미국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백악관을 움직이는 또 다른 좋은 방법은 미 의회를 동원하는 것이다. 미 상원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입법 중인 전략적 경쟁법은 ‘백신 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백신 가지고 너무 인색하게 굴지 말고 외국에 좀 나눠주자는 것이다. 한국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한 텍사스, 조지아 등과 삼성전자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안달이 난 다른 주들을 합치면 적어도 10명 이상의 상원 의원을 움직일 수 있다. 백악관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입김이다.

오는 5월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백신 공조에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한다. 하지만 미·중 패권전쟁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우고 레임덕에 빠진 한국의 지도자에게 워싱턴이 얼마나 호의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지금은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전기차에서 미국이 무시 못할 협상력을 지닌 민간 외교를 통해 백신을 확보할 때다. 우리의 빅4 모두 상원 의원을 움직일 순 있지만 백악관과 통 큰 빅딜을 할 수 있는 기업 총수는 딱 한 사람이다. 중국과의 패권전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지어줄 수 있는 옥중의 포수(!)다. 한번 해볼 만한, 승산 있는 윈윈 협상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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