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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읽는 세상] 법에 보편성, 안정성, 확실성이 없으면 소송이 잦아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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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소송은 개인이나 기업이 행정당국, 즉 행정청을 상대로 내는 소송입니다. 행정청(정부 또는 국가라고 봐도 무방)이 내린 처분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고 행정청은 자기가 잘했다고 다툽니다. 이럴 때 가는 곳이 행정법원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엔 행정법원 이외에도 민사법원, 형사법원, 가정법원, 특허법원 등이 있습니다. 다루는 소송이 각자 특화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행정소송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은 결코 좋은 뉴스가 아닙니다. “행정소송 홍수시대”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사태가 심각하긴 한가 봅니다. 관청의 처분에 억울함이 많다는 거지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 “법원에서 만나자”는 거지요.

기사는 행정소송 급증 이유로 법의 불안정성을 꼽습니다. 개인과 기업의 행위가 법에 저촉되는지가 불분명하고, 규제법이 갑자기 생겨서 어떤 법이 언제 생겼는지조차 알 수 없고, 시대에 맞지 않아 누구든 걸려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기자는 지적합니다.

두 가지를 학문적으로 분석해 봅시다. 행정청은 가능한 한 규제하려 합니다. 칼이 있으면 베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행정청은 규제권을 휘두르고 싶어 합니다. 법을 교묘하게 어겨가면서 이익을 보는 개인과 기업도 있지만, 규제권을 남발하는 행정당국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공공선택론’이라는 학문은 규제권을 적극 행사하려는 행정당국과 공무원의 기본 속성을 분석합니다. 공무원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겁니다. 규제가 늘어야 자기 일자리가 보전된다고 보는 것이죠. 행정당국은 그래서 늘 규제 법률을 가능한 한 많이 만들려고 한다는 겁니다.

문제는 국회인데요. 국회는 입법부라고 해서 법을 제정합니다. 국회가 새로운 법을 정말 많이 만들어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여당이 장악한 국회가 총 2만4141건의 법안을 발의했다고 합니다. 이전 국회의 1만7822건과 비교해 35.4%나 늘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국회가 무슨 법을 만들었는지조차 알기 어렵습니다. 이 법에 따라 사업과 행동에 제한당하는 기업과 개인들은 무슨 법이 언제, 어떤 내용으로 바뀌었고 새로 생겼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법철학자들은 법이 법다운 법이기 위해선 크게 세 가지 정도를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 보편성입니다. 법 앞의 평등은 바로 보편성을 말합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거지요. 대형마트만 막는 법은 보편성의 원칙에서 어긋납니다. 시대 변화에 따른 소비자선택의 결과인데 그것을 가로막는 것은 편향적이라는 거지요. 둘째는 확실성입니다. 사람들은 법에 따라 행동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행동규칙이 되는 법의 내용이 확실하기를 바랍니다. 기업과 개인들이 분명하게 알 수 있고, 명확하게 알 수 있어야 행동합니다. 모호하거나 해석의 여지가 많다면 행정청이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해서 적용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당하는 당사자는 억울해지는 것이지요. 셋째로 법은 안정적이어야 합니다. 법이 내년에 어떻게 바뀔지, 5년 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면 누가 자기 계획대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부동산 정책이 20여 번이나 바뀐다면 부동산 시장은 난리날 겁니다. 세금을 매년 올려서 물리고, 뭘 할 수 있게 했다가 갑자기 금지하면 경제 주체들은 큰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복잡한 법 이론은 차치하고, 억울하다는 행정소송이 많은 나라치고 좋은 나라는 없습니다. 국민과 정부가 늘 싸운다는 이야기니까요.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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