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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는 날마다 '보도반박'…산업은행은 기자들과 소송 [박종서의 금융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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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가 요즘 언론보도에 무척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설명자료를 내면서 언론보도 내용을 해명하거나 반박하고 있지요.

금융위는 보도와 관련해서 크게 두 가지 자료를 공개합니다. 하나는 새로운 정책들이 주로 담긴 일반 보도자료입니다. 다른 하나는 기사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거나 자신들의 뜻을 왜곡했다고 느꼈을 때 전해주는 보도설명자료입니다.

금융위가 지난 달 내놓은 보도설명자료는 17건으로 갑자기 세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지난해 월평균 보도설명자료 발표 건수는 6.5건이었고, 올 들어 1월과 2월에는 각각 6건이었습니다. 지난 달 [보도반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보내진 자료만 7건입니다. 공직생활 하면서 보도반박 자료를 처음 써봤다는 관료도 있습니다.

일반 보도자료가 증가해 보도설명자료도 덩달아 많아졌나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지난 달 일반 보도자료는 54건으로 1월(48건), 2월(51건)과 비교해 큰 차이 없가 없습니다. 지난해 월평균 일반 보도자료 발표 건수는 52.1건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금융위는 1년간의 일반 보도자료 발표 건수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도설명자료의 표현 수위도 높습니다. 3월23일 보도반박 자료의 제목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금융권 일각의 오해를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언론보도 등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하겠습니다”입니다. 지금까지는 물렁하게 대응했다는 이야기인지 괜히 궁금하고 삐딱해집니다.



공무원들은 기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공무원들이 만드는 정책들은 일반인들이 바로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금융위의 모든 일반 보도자료와 보도설명자료는 홈페이지 공개돼 있습니다. 한번 찾아서 읽어보시면 생각보다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공무원들은 기자들을 거치지 않고서는 자신들이 애써 만든 ‘상품(정책)’을 제대로 판매할 길이 없다보니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애를 쓰지요. 보도설명자료는 기자들과 마찰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발표해왔는데 지금은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언론보도에 강경한 금융위의 움직임에 대해 저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먼저 금융소비자보호법과 가계부채 관리방안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졌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25일부터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금융상품 판매질서에 대대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예금과 적금을 포함한 금융상품 전체의 판매행위에 금융회사들의 책임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법규가 현실에 걸맞지 않다거나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지면을 장식하고 있지요.

이번 달로 발표가 늦춰진 가계부채 관리방안도 금융소비자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결국 대출을 죄려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니까요. 당초 지난 달에 대책을 발표하려했으나 4월 중으로 미뤄진 이유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7일)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란 얘기도 나옵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등의 신도시 투기 의혹으로 토지담보대출 등에 대한 규제가 추가될 수 있다는 이유가 붙어 있습니다.

금융위는 코로나19 국면에서 나름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언론의 까칠한 보도가 더욱 거슬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금융소비자보호법과 가계부채 관리방안만으로는 언론보도에 예민해진 금융위를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생깁니다. 금융위는 수없이 많은 금융정책을 추진해왔고 기자들의 까칠한 접근에도 이력이 나 있기 때문입니다.

항간에서는 금융위의 이례적인 반응을 인사와 연결 짓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영전을 기대하고 그동안의 성과에 흠집을 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장수 ‘경제사령탑’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이미 사의도 밝혔습니다. 후속 인사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커지면서 금융권에서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경제부총리설이 매우 그럴 듯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연유가 무엇이든 반박자료나 해명자료가 늘어나면 기자들은 부담을 갖게 됩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기사를 쓴다고 해도 완벽한 취재는 어렵기 때문에 기자들은 항상 ‘오보의 위험’에 노출되기 마련입니다. 오보의 위험에 위축되지 말고 써야할 기사를 써야지 생각하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금융위는 아직까지 기자들에게 소송을 걸지 않고 있습니다만 산업은행 같은 곳은 기자를 법정에 세우기도 합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지난해에만 2건의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걸었습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소송을 제기한 해당 언론사 기자를 기자간담회에서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된 간담회였습니다.

그는 “우리가 장난으로 던지는 돌,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연못에 사는 개구리는 등이 터진다”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양대 항공사의 결합이라는 중차대한 사안을 두고 기자들이 장난이나 무심코 돌을 던진다고 비유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이 회장은 간담회 자리에서 대한항공의 인수와 관련해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을 접촉한 적이 없는데 ‘수시로 의견을 교환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격하게 따졌습니다. ‘(김 전 위원장과) 사석에서도 자주 만나는 막역한 사이’라는 표현도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기사를 포함해서 산업은행이 해당 언론사와 기자에게 배상하라고 요구한 돈이 2억원입니다.

또 다른 기자는 키코(KIKO·외환 파생상품) 계약과 관련 사실왜곡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1억원의 손해배상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산업은행이 소송을 위해 선임한 법무법인은 각각 광장과 충정입니다. 모두 대형 로펌으로 광장의 경우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버금갈 만큼 큰 곳입니다.

산업은행은 이 회장의 임기인 2019년과 2018년에도 언론사를 상대로 1건씩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소송가액은 각각 3억500만원과 2억5000만원이었습니다. 로펌에 지급한 돈은 5000만원이었습니다. 산업은행은 2건의 사건에 대해서는 도중에 소취하를 했습니다. 손해배상 소송은 누구도 침해될 수 없는 법적 권리여서 산업은행이 잘 못 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사연이 있을 것이어서 산업은행과 기자들, 양측 어느 곳을 옹호하거나 비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금융위와 산업은행은 각각 행정부와 공공기관으로서 그 어떤 곳보다 언론의 감시가 필요합니다. 언론보도에 대해 강하게 반응할수록 감시의 압력은 떨어질 것입니다.

소송은 말 할 것도 없고 보도반박 자료만 나와도 기사는 줄어듭니다. 반박의 내용이 형식적이고 알맹이가 없더라도 추종보도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은 보도반박 자료에 수긍이 돼서 기사를 안 쓸 것입니다. 하지만 기사 가치가 있어보이더라도 경쟁회사가 이슈를 끌고 나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슬며시 눈을 감기도 합니다. (데스크에 “보도반박 자료 나왔다”고 하면서 ‘물 먹은 걸’ 감추기도 좋습니다.)

금융위나 산업은행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기사를 반박하고 기자와 소송을 벌인다고 할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반박과 소송에 겁먹지 않고 묵묵히 기사를 써보겠다는 뜻을 다지겠다는 약속을 드리고자 글로 남깁니다. 설마 이 글에도 반박을 하거나 소송을 걸지는 않겠지요.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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