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국내 게임회사의 흥행은 하나의 ‘공식’에 따라 결정됐다. 장르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었다. 유저 간 경쟁을 자극하고, 우위에 서려는 욕구가 있는 고소득 남성 게이머를 공략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확률형 뽑기, 강화 아이템을 기반으로 한 수익모델을 적용하면 ‘한국형 RPG’의 조건이 갖춰졌다.
최근 주식시장에서는 이에 어긋나는 ‘새로운 흥행공식’을 쓴 게임사들의 주가가 급등세다. 데브시스터즈와 컴투스다. 이들은 유료 결제를 많이 하는 ‘헤비 유저’를 끌어들이기보다 이용자 수를 늘리는 대중화 전략을 추구했다. 확률 논란과 과금 모델에 대한 이용자 피로도가 높아지면서 헤비 유저들에게 의존하는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서 벗어나 대중적 시장을 개척하는 전략이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공 키워드는 ‘대중화’
데브시스터즈는 30일 17.54% 급락한 11만500원에 장을 마쳤다. 최근 급등한 탓에 장 마감 직전 차익실현 매물이 대거 나오면서 주가가 급락했지만 연초 대비 수익률은 664.71%로 국내 주식시장 전체 수익률 1위다. 컴투스는 이날 월초 대비 25% 오른 17만3000원에 마감했다.이들 종목의 상승세는 기존 게임업계 강자가 최근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대비된다. 국내 게임 대장주인 엔씨소프트는 이달 들어 9.72% 하락했다. 넷마블은 같은 기간 2.83% 올랐지만 데브시스터즈나 컴투스의 상승세에 못 미쳤다.
데브시스터즈는 ‘쿠키런: 킹덤’의 흥행을 바탕으로 게임업계 역사에 남을 극적인 반전을 선보이고 있다. 6년 연속 적자에 연초 기준 시가총액 200억원대에 불과했던 회사가 불과 3개월 만에 시총 1조원대,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 평균 1341억원의 건실한 기업으로 변신했다. ‘쿠키런: 킹덤’은 경쟁에 대한 압박이 적고, 인지도가 높은 쿠키런 캐릭터를 부담없는 가격에 수집하는 게임 구성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이 게임은 구글 플레이스토어보다 애플 앱스토어에서 높은 매출 순위를 보이는데, 업계에서는 ‘쿠키런: 킹덤’의 핵심 소비자층이 여성 게이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컴투스는 ‘서머너즈 워’ 지식재산권(IP)을 기반으로 북미·유럽 시장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국내 게임사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매출의 79.4%가 해외에서 발생했다. 올 들어서는 다음달 출시를 앞둔 ‘서머너즈 워: 백년전쟁’의 흥행 조짐이 주가에 반영되면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서머너즈 워’ IP 역시 MMORPG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과금 유도와 높은 접근성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컴투스 관계자는 “‘서머너즈 워: 백년전쟁’도 과금을 통한 강화와 뽑기보다 사용자의 전략에 방점을 둔 게임 기획과 사업모델(BM)을 중심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류 MMORPG 게임의 위기
대형 게임사들은 기존 사업모델이 이용자와 정치권의 반발을 사며 위기에 처해 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IP의 매출 비중이 80%대에 달하고, 넷마블 역시 매출 비중 1위 게임인 ‘리니지2 레볼루션’이 리니지 IP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모두 소수의 고액 과금 사용자 의존도가 높은 구조다.그런데 최근 ‘확률형 아이템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 같은 전략에 걸림돌이 생겼다. 게임 이용자들은 “수억원을 퍼부어도 원하는 캐릭터와 무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원성을 쏟아냈고, 이에 국회가 게임 아이템 획득 확률을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획득 확률은 업계 자율규제로 공개가 이뤄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이용자들의 피로도가 높아졌다고 지적한다.
이승훈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게이머들이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분노를 표출하면서 대형 게임주가 정체되는 동안 컴투스와 데브시스터즈는 많은 이용자에게 적은 소비로도 높은 효능감을 제공하는 저과금 모델로 틈새시장을 공략했다”며 “최근 정치권에서도 확률 아이템 및 수익모델 규제가 논의되고 있어 이런 이슈가 계속되면 규제 리스크에서 벗어난 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도 힘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범진/양병훈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