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외면한 ‘책상머리 대책’이 쏟아지면서 가뜩이나 코로나로 어려운 실물경제에 큰 짐이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한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오는 6월 말부터 옥외 주류 광고가 사실상 전면 금지된다. 옥외 대형 광고판뿐 아니라 모든 일반음식점과 유흥주점 간판은 물론 영업용 차량에도 술병 그림이나 술 브랜드명을 넣을 수 없다.
주류업계, 광고업계와 자영업자 모두 “현실을 무시한 과도한 규제”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시기적으로 코로나 와중에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란 탄식부터 나온다. 젊은이들이 자주 가는 편의점이나 유튜브 등 온라인 미디어는 규제대상에서 빠졌다는 점에서 형평성과 실효성 역시 결여됐다는 불만도 쏟아진다.
그제 시행에 들어간 금융소비자보호법도 현장 사정을 도외시한 탓에 소비자와 금융회사 모두를 불편하고 귀찮게 만드는 애물단지가 돼버렸다. 소비자 보호를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판매규제를 대폭 강화해 상품 설명과 녹취 등의 과정이 길어져 5분 걸리던 예·적금 가입시간이 30분, 펀드 가입에는 1시간 반도 모자랄 판이다. 고객은 짜증을 내고 금융회사는 상품 가입을 중단시키는 등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여당이 추진 중인 ‘포장재 사전 검열법’도 사정은 비슷하다. 폐기물 발생을 줄이겠다는 취지지만 전수검사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과 시간 등 업계 부담을 감안하면 황당하고 현실성 없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지난해 환경부는 음료 제품에 붙어 있는 ‘부착형 빨대’를 전면 금지하려다 업계 반발이 커지자 플라스틱 빨대만 금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기도 했다.
현실과 괴리된 탁상정책 사례는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사전에 정밀 현장조사나 업계 의견수렴은 등한히 한 채 편향된 이념과, 현실 무지, 명분과 원리원칙에 갇혀 밀어붙이기만 하기 때문이다. “길거리 술 광고를 없애면 국민이 술을 덜 마실 것”이라는 단순한 발상이 대표적이다. ‘국민건강 증대’ ‘소비자 보호’ ‘폐기물 감소’ ‘재활용 증대’ 등 규범적 당위성에만 매몰돼 그런 정책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부작용을 불러오는지에는 눈감아 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장의 호소는 그저 기득권자들의 불만이나 반발 정도로 치부해버리기 일쑤다.
이런 원리주의식 탁상행정은 한국만의 ‘갈라파고스 규제’로 귀결된다. 지금 기업과 소상공인들은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정부 여당이 선심성 퍼주기는 안 해도 좋으니, 제발 황당한 규제로 괴롭히지나 말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정부가 코로나 극복에 앞장서도 모자랄 판에 과잉규제로 실물경제와 민생을 고사(枯死)시켜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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