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노동단체, 이른바 '제1노총' 지위를 놓고 경쟁 중인 양대 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동조합총연맹) 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달 말 시작되는 최저임금위원회 심의에 참여할 근로자위원 추천권 배분을 놓고서다. 민주노총이 그동안의 관행을 깨고 근로자위원 9명 중 5명을 추천하겠다고 하자 한국노총은 즉각 예정에 없던 자료를 배포하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오는 31일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시작될 예정인 가운데 노동계 내홍으로 자칫 심의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민주노총이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민주노총이 제1노총이 된 지 3년째로 최저임금위원회 구성을 재정돈해야 한다"며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을 5명 추천하겠다"고 선언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각각 9명씩 27명으로 구성된다. 이 중 노동단체가 추천하는 근로자위원은 그동안 조합원 수가 가장 많은 한국노총이 5명, 민주노총이 4명을 추천해왔는데, 양 위원장이 이를 뒤집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고용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양대 노총 조합원 수는 2017년까지는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을 앞섰으나 2018년 민주노총이 역전한 이후 2년 연속 제1노총을 유지하고 있다. 2019년 기준 민주노총 조합원 수는 104만5000명, 한국노총은 101만8000명이었다. 2020년 집계는 올해 연말에 나온다.
민주노총의 '도발'에 한국노총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노총은 공식 반박은 하지 않았지만 지난 22일 예정에 없던 자료를 냈다. 공공서비스노동조합총연맹(공공노총)과의 통합을 위해 최근 1차 회의를 열었고, 5월 통합 조인식을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이번 통합으로 전국통합공무원노조, 교사노조연맹, 지방공기업연맹 등 10만여명이 조합원이 늘어나 전체 조합원 수는 140만명 규모로 확대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제1노총' 지위 탈환을 선언한 것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사회적 논의 기구 참여에 있어 중요한 것은 쪽수가 아니라 논의를 대하는 태도"라며 "더군다나 내년이면 제1노총이 바뀔텐데, 매번 바뀔 때마다 근로자위원 수를 조정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양 노총 간의 갈등의 전조는 지난달 말 협력을 다짐하는 상견례에서도 일부 노출되기도 했다. 민주노총 신임 지도부가 인사차 한국노총을 방문한 자리였다. 당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그동안 최저임금 결정 과정은 공익위원들에 노동계가 끌려가는 모양새였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양 노총이 새로운 접근방식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양 노총의 공조를 강조하는 듯한 발언이었지만, 민주노총이 사실상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 수 조정 의사를 밝힌 것이라는 게 노동계 안팎의 평가다.
제1노총이라는 지위는 국내 대표 노동단체라는 상징적 의미에 더해 500개가 넘는 정부위원회의 노동계 몫을 결정하는 의미가 크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최저임금위원회 뿐만 아니라 전체 정부위원회의 노동계 몫 배분 문제를 거론한 이유다.
양대 노총의 갈등 조짐에 정부는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양 노총이 각각 5명씩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을 추천해오더라도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까지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 추천 관련 통보를 받은 바 없다"며 "기존에 해오던대로 양 노총이 협의해 9명을 추천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