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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두 은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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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작가들이 함께 활동하는 포럼 대화방에 한 후배가 자신의 안부와 함께 내 소식을 전해왔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도 교과서에 나의 어린 시절 얘기가 실려 있어서 반가웠는데, 중학교에 올라가 새로 받아온 교과서에 나의 어린 시절 얘기를 또 만나게 되니 선생님의 고향은 정말 글감이 넘치는 곳 같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글은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아침 등굣길의 이슬을 털어주는 이야기이고,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글은 백일장에 나가서 상을 받지 못하고 돌아온 제자를 격려하는 선생님 얘기였다. 백일장에서 떨어지고 와 느티나무 그늘에 힘없이 앉아 있는 어린 제자에게 선생님이 말한다.

“얘야. 봄에 다른 나무보다 일찍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에도 먼저 피는 꽃이 있고, 나중에 피는 꽃이 있단다. 아직 다른 꽃은 피지 않았는데 어느 한 송이만 일찍 피면 그 꽃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마련이지. 그렇지만 선생님이 보기에 그 나무 중에서 가장 먼저 핀 꽃들은 대부분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 제대로 된 열매를 맺는 꽃들은 늘 더 많은 준비를 하고 나서 피는 거란다.”

그때 선생님의 위로는 내게 어린 시절뿐 아니라 스무 살 이후 신춘문예에 10년 가까이 떨어질 때 다시 책상에 앉아 새로운 글쓰기를 할 용기를 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으니까 어느 결에 5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올해는 아직 찾아뵙지 못했지만, 지난해엔 그때 인연을 맺은 제자 아들의 결혼 주례까지 맡아주실 만큼 건강하시다.

마침 교과서 얘기도 나오고 해서 옛 은사님께 전화를 드린 그 날, 고등학교 은사님께서 일부러 맞추신 것처럼 내가 일하는 사무실로 전화를 하셨다. 두 분은 중학교 동창에 사범학교 동창이기도 한데 고등학교 은사님은 퇴직 후에도 우리말 연구에 관심이 깊은 분이다. 십수 년 동안 강원도 영동지역 방언 연구를 독자적으로 해오셨다. 새로운 낱말이나 지역 속담 같은 걸 듣게 되면 용례에 대해 소설가인 내게 바로 전화하셨다.

어느 신문사의 주관으로 새로 지역 방언을 포함한 ‘말모이 사전’을 만들 때 거기에도 많은 자료로 도움을 주셨다. 나도 새롭게 떠오르거나 듣게 되는 말이 있으면 선생님께 바로 전화를 드렸다. 그렇게 애쓴 사전이 드디어 나왔는데 선생님은 사전을 펴낸 출판사로부터 한 권 받지만, 따로 한 권을 더 구입해 글 쓰는 제자에게 보내주신다고 전화를 하신 것이었다.

두 분 은사님께 나만 따로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친구들은 초등학교 친구대로 우리 선생님을 존경하고, 고등학교 친구들은 고등학교 친구대로 책에서 손을 놓지 않으시는 선생님을 자랑으로 여긴다. 그나저나 코로나19가 잠잠해져야 선생님을 뵐 텐데, 성급한 마음에 이 봄에 꼭 찾아뵙겠다는 약속부터 먼저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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