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만호 은평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58·사진)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1985년 교편을 처음 잡았을 때만 해도 그의 시력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시야가 흐려지더니 2007년 망막 세포가 점차 퇴행하는 ‘망막세포변성증’ 확진 판정을 받았다. 30㎝ 정도 앞에 앉은 기자에게 “형체만 어렴풋이 보인다”고 말한 구 교사의 시력은 지금도 계속 나빠지고 있다.
구 교사는 다음달 1일부로 재직 중인 은평문화예술정보학교의 ‘교감 선생님’이 된다. 1급 시각장애인 교사가 맹학교와 같은 특수학교가 아닌 공립 고등학교의 교감에 임용된 것은 구 교사가 처음이다. 직업교육 교사로서 주로 건축 과목을 가르쳐온 구 교사는 지난 3년간 은평문화예술정보학교의 교무부장을 거쳐 이달 5일 이 학교의 교감 임용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구 교사가 의사로부터 시각장애 진단을 처음 받은 것은 1998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학교와 교육청에 시각장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교육청에서 잘릴까봐 두려웠어요. 당시만 해도 종이에 쓰인 글씨 정도는 읽을 수 있어서 최대한 숨기려고 했죠.”
구 교사가 서울교육청에 시각장애 사실을 처음 알린 것은 2007년. 구 교사는 시각장애를 숨기고 지낸 당시 10년을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했다.
“남들은 저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저는 제 자신을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 지속되면 문제가 있을 것 같았죠. 그래서 교육청에 시각장애 사실을 알린 이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한라산 등반이었습니다. 제 스스로에게 ‘너 장애 있다고! 숨기는 게 쉽지 않을 걸?’이라는 질문을 던진 도전이었죠. 평평하지 않은 땅을 밟으면서 그때 절실히 느꼈어요. 받아들여야겠구나.”
장애 사실을 인정한 구 교사는 최고의 성과를 내는 교사였다. 2009년 제자와 함께 국제기능올림픽에 출전해 벽돌쌓기(조적) 종목 금메달을 따냈다. 벽돌쌓기 종목은 최대 1㎜까지만 오차가 허용되기에 정교함이 필수적인 작업이다. “전 학생들에게 항상 말해요. ‘눈 안 보이는 선생님도 하는데 너희들이 왜 못하겠니? 하면 된다! 안 되면 다시 해보자’라고 말이죠.”
강의와 달리 구 교사가 맡아온 교무부장은 행정 업무가 많은 자리다. 앞으로 맡게 될 교감도 마찬가지다. 글자를 확대해 한 글자씩 화면에 띄우는 기계의 도움이 없으면 문자를 읽을 수 없는 구 교사에게 행정 업무는 남들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저는 남보다 1시간 정도 이른 오전 7시에 출근해요. 그날 할 일을 미리 준비하는 거죠.”
교감으로서 구 교감의 목표는 뭘까. 그는 “학교 구성원의 행복”이라고 했다. “다른 선생님들의 배려와 도움이 없었다면 저는 결코 교감이 될 수 없었을 겁니다. 저를 동료로 받아준 동료 선생님과 학생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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