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확산으로 마땅한 총회 장소를 찾지 못해 버스에서 진행한 조합 임원 해임총회가 무효가 되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대부분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총회 개최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어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15일 법조계와 정비업계에 따르면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 조합이 비상대책위원회격인 ‘개포원’ 모임을 상대로 “조합장 해임총회가 적법하게 이뤄지지 않아 이를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법원은 “‘코로나19’확산과 조합장 해임 반대자들로 인해 총회 장소를 구하는 것이 여의치 않다는 사실은 인정한다”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거나 토론할 기회를 제공할 수 없는 버스 안에서 총회를 개최한 것은 해임총회에 중대한 절차상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앞서 개포주공 1단지의 ‘개포원’ 모임은 지난해 12월 송파구 잠실동 ‘잠실 한강공원 4주차장일대 및 인근 D중식당에서 해임총회를 열어 조합장을 해임할 계획이었으나, 조합 측에서는 D중식당과 송파구청 등에 집합금지와 관련된 민원을 넣고 현장에서 조합원들의 음식점 입장을 방해했다. 이 때문에 개포원 모임은 인근에 미니버스를 대여해 일부 인원만 태운 채 유튜브 등을 통해 총회를 개최했다. 법원은 이와 관련해 “실시간 동영상 중계를 했다고 할지라도 조합원들에게 실질적인 토론 기회를 제공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개최 장소가 바뀌어)조합원들에게 총회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을 정도로 개최 장소가 통지됐을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법원은 또 “서면결의서 중 다시 철회서가 제출된 부분은 총 226장인데 이를 출석조합원에서 제외하면 총 2403명이 출석해 과반수 출석 요건(2566명)을 갖추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이런 법원의 판단에 “당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집합금지 명령으로 장소 물색이 어려웠고, 반대자들의 총회 방해행위 때문에 미니버스에서 해임 총회를 열었다”며 ”조합 측의 방해 때문에 조합원들에게 실질적인 토론의 기회를 주지 못한 것”이라며 법원의 판결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반면 개포1단지 조합은 "일부 조합원의 주도로 행해진 해임총회가 여러사유로 법원에서 효력정지로 결정돼 조합사무실 점거 등 그간의 혼란은 종식되었다고 생각한다"며 “조합원의 의견을 경청해가면서 향후 일정을 꾸려가려 한다”고 원활한 사업진행을 약속했다.
이를 두고 정비업계에서는 ‘온라인 총회’ 도입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강남권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조합 임원 해임 등 조합원의 이익과 관련된 시급한 현안이 ‘코로나19’로 줄줄이 연기돼 조합원의 재산권 침해가 심각하다”며 “집합금지 명령으로 총회 장소를 구해도 반대자들이 민원을 넣으면 실질적으로 개최가 어려운 게 실정”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감염병 확산 등으로 총회 의결을 할 수 없을 경우 전자투표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지난해 9월 발의했으나 아직 국회에 계류돼 있다. 한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개포1단지(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는 재건축 이후 지하 4층~최고 35층, 6702가구 대단지로 지어질 예정이다. 2023년 11월 입주 예정이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