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억7463만 장. 지난해 한국에서 마스크가 이만큼 생산돼 버려졌다. 바닥에 펼치면, 여의도 17배 면적을 덮는 크기다. 버려진 마스크 외에도 식당이나 회의장에 비말을 차단하는 플라스틱 가림막, 점심이면 책상 한편에 쌓이는 도시락 포장용기 등 ‘코로나 쓰레기’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를 방치했다가는 코로나 팬데믹보다 더한 위기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저탄소국으로 가야 하는 한국에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연간 탄소 배출량은 약 7억t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국토의 약 5.5배 땅에 소나무를 빼곡히 심어야 흡수가 가능한 양이다. 더 무서운 건 배출량 증가속도 1위라는 낙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지난 30년간 연평균 0.5%의 탄소를 줄였으나, 한국은 연평균 1.5%씩 늘린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2.3%로 독일(14.6%), 영국(12.5%), 미국(7.9%)에 한참 못 미친다. 그래서 일부는 한국을 ‘기후 악당’으로 묘사하고 있다(영국 기후행동추적).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탄소중립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흡수량’인 상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①탄소 배출은 최소화하고 ②산림, 탄소 포집 등을 통해 흡수를 최대화해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이 재작년 일찌감치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일본, 미국 바이든 정부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밝혔다. 온실가스 1위 배출국 중국도 ‘2060 중립’을 선언한 상태다.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주력인 우리로선 쉽지 않은 도전이다. 저탄소 전환으로 인한 한계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2017년 탄소 배출량 대비 75%를 감축할 경우의 시나리오를 작성한 보고서가 있다. 현재 철강 공장의 절반은 폐쇄해야 한다. 5만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신규 반도체 공장은 해외에 지어야 하며, 7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생산 일자리 8000개도 없어진다고 한다. 경제 성장과 탄소 저감이라는 상충관계에서 뾰족한 수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기업의 환경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탄소 감축을 ‘생존’의 문제로 보고 있다. 구글, 애플이 삼림 사업이나 탄소 배출량 추적 툴 개발을 통해 탄소 중립을 2030년까지 달성하기로 하는 등 세계의 자본이 온실가스가 없는 기업 쪽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기업이 변할 수밖에 없다.
탄소 국경세까지 언급되고 있다. EU, 미국 등은 기후변화 대응이 미흡한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제품에는 고율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탄소중립을 안 하면 국제 고립을 자처하는 꼴이며, 한국 같은 수출 중심 경제구조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친환경 기업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둘째, 정부의 정책전환과 지원도 중요하다. 에너지다소비형 산업구조를 친환경 산업구조로 개편하고 온실가스 배출의 주 원인인 발전부문의 에너지 믹스를 고민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안정적인 전기, 수소 공급체계를 바탕으로 탈탄소 기술개발을 위한 정부·기업 간 협력체계도 필요하다. 철강은 석탄 대신 수소로 생산하도록 혜택을 주고, 수소를 합성한 화학물질이 개발되도록 하는 동시에, 탄소 포집 기술에는 세액을 공제하는 등 유인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마지막으로 국민의 수용과 ‘착한 소비자’의 선택도 중요하다. 탄소중립에 따른 비용증가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확산해야 한다. ‘빨대는 바다 생물에게 해로워요’라는 초등학생 편지에 빨대를 없앤 유제품 기업이 나오는 등 세상을 바꾸는 소비자의 힘도 필요하다. 달라진 게임의 법칙에 모든 경제주체가 함께 대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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