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걸어 다니는 무인 모빌리티 ‘타이거(TIGER)’를 공개했다. 험난한 지형에선 네 개의 다리로 걷다가 평탄한 지형을 만나면 네 개의 바퀴로 달리는 변신 로봇이다. 모빌리티와 로보틱스 기술을 융합해 이동의 한계를 넘는 새로운 제품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모빌리티와 로보틱스의 융합
현대차그룹은 10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타이거를 처음 선보였다. 타이거는 ‘변신하는 지능형 지상 이동 로봇(Transforming Intelligent Ground Excursion Robot)’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첫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이날 공개된 타이거는 첫 번째 콘셉트 모델로, ‘X-1’으로 명명됐다.타이거의 길이는 약 80㎝, 폭은 약 40㎝다. 무게는 약 12㎏이다. 가장 큰 특징은 네 개의 바퀴가 달린 다리다. 네 개의 바퀴와 네 개의 다리가 결합돼 전례 없는 이동성을 갖췄다. 울퉁불퉁한 지형을 지나거나 장애물을 넘어갈 땐 네 개의 다리로 걸어간다. 평탄한 지형을 만나면 다리를 안쪽으로 집어넣어 4륜구동 차량으로 변신해 달린다. 가다가 길이 막히면 보행 능력을 이용해 일반 차량이 갈 수 없는 곳으로 이동한 뒤 다시 주행한다.
전·후진은 물론 좌우로도 쉽게 방향을 바꿀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능형 로봇 기술과 바퀴를 결합해 오프로드 차량조차 갈 수 없는 험난한 지형에서도 다닐 수 있게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타이거의 활용 분야는 다양하다. 도심은 물론 오지 등 일반 차량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에 상품을 보낼 때 타이거를 이용할 수 있다. 재난 현장 등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곳에 응급 물품을 수송할 때도 활용 가능하다. 무인항공기(UAV)에 결합해 먼 거리를 날아간 뒤 착륙해 수송을 담당할 수도 있다.
타이거는 내부에 화물 적재실을 갖춰 물품 보호에도 유리하다. 로봇 다리로 항상 수평을 유지해 불규칙한 지형에서도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다. 이 덕분에 기존 서스펜션을 장착한 차량보다 더 많이 실을 수 있다.
물류 로봇 시장 진출
타이거는 현대차그룹의 미래 모빌리티 담당 조직인 ‘뉴 호라이즌스 스튜디오’에서 개발했다. 지난해 9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문을 연 스튜디오는 미래 모빌리티를 구체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타이거가 그 첫 작품이다. 스튜디오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인 ‘CES 2019’에서 현대차그룹이 공개한 걸어 다니는 모빌리티 ‘엘리베이트’를 기반으로 타이거를 개발했다.타이거 개발 과정에선 다양한 회사와의 협업이 이뤄졌다. 인공지능(AI) 기반의 엔지니어링 설계 분야 선두 기업 ‘오토데스크’, 콘셉트 디자인 전문 기업 ‘선드버그-페라’ 등이 대표적이다. 뉴 호라이즌스 스튜디오의 존 서 상무는 “전 세계 혁신 기업들과 협력해 미래 모빌리티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2월 세계 최고 로봇 기업인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약 1조원에 인수하기로 하면서 로봇 기술과 미래 모빌리티의 본격 결합에 나섰다. 주변의 상황 변화를 즉각 감지·대응하는 로봇 기술은 완전 자율주행 구현에 필수다.
현대차그룹은 향후 시장 규모가 크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물류 로봇 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다. 이어 건설 현장 감독이나 시설 보안 등 각종 산업에서 안내·지원 역할을 할 수 있는 서비스형 로봇 사업도 시작한다. 장기적으로는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