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는 25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 피해자에게 한 성적 언동 일부를 사실로 인정하며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피해자인 박 전 시장 비서 A씨 측은 입장문을 내고 "이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질 시간이 됐다"고 밝혔다.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변호인단·피해자 지원단체는 입장문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보통의 성희롱 사건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한 결과로도 박 전 시장의 A씨에 대한 인권침해를 사실로 인정했다"며 "성희롱 사실이 인정된 만큼 고소 사실과 피해자의 지원요청 사실 누설과 관련된 이들은 직을 내려놓고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인권위가 서울시와 여성가족부,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에 관련 제도 개선을 권고하기로 의결한 데 대해선 "구체적이기보다는 화두를 던지는 편에 가깝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피해자 측은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해서는 "가해자가 소속되었던 당이자, 집권 여당이고 다수당이고, 법제를 만들고 검토하고 정비하는 입법자로서 더불어민주당은 지금까지 무책임한 모습으로 일관했다"고 맹비판하며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하고, 사안을 축소, 은폐, 회피하려고 했던 모든 행위자들을 엄단하여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 측은 "이 사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며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 (민주당의)이 메시지가 박원순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신호탄이었고,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수호하기 위해 피해자의 일상을 끝도 없이 파괴했다. 사실의 영역이 아닌 믿음의 영역 안에서 피해자를 공격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뱉어 놓은 말과 글을 삭제하기를 바란다. 음해성 가짜뉴스 게시자들은 구속수사, 엄중 처벌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박원순 전 시장의 업무폰은 단 한 번도 수사 및 조사과정에서 증거조사 대상이 되지 못했다. 남은 검찰 수사 과정이나 어떤 단계에서라도 포렌식되어야 한다"며 "현재 업무폰을 보관하고 있는 자는 범죄 증거를 증거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피해자 A씨는 "4년 동안 많이 힘들었다. 지난 6개월은 더 힘들었다"면서도 "인권위 발표에는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고 우리 사회가 변화해 나아가야 할 부분이 언급돼있다"고 했다.
A씨는 "사실인정, 진실규명이 중요했지만 피해 사실이 세세하게 적시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 기관에서 책임 있게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시간들"이라며 "이 시간이 우리 사회를 개선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인권위는 이날 2021년 제2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박 전 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보고 안건을 상정해 심의한 결과 서울시와 여성가족부,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에 관련 제도 개선을 권고하기로 의결했다.
인권위는 "박 전 시장이 늦은 밤에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다"며 "이와 같은 박 전 시장의 행위는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으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러한 행위들을 제외하고 피해자가 주장한 다른 여러 피해 의혹들은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인권위는 "피조사자(박 전 시장)의 진술을 청취하기 어렵고 (박 전 시장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반적 성희롱 사건보다 사실관계를 좀 더 엄격하게 인정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인권위는 인정된 사실만으로 박 전 시장의 성적인 말과 행동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했다.
특히 박 전 시장의 비서였던 피해자는 보좌 업무 외에 샤워 전·후 속옷 관리, 약 복용 챙기기, 혈압 재기, 명절 장보기 등 사적영역의 노무까지 수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권위는 "위와 같은 비서업무의 특성은 그 업무를 수행하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친밀성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공적 관계가 아닌 사적관계의 친밀함으로 오인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인권위의 조사 결과는 경찰·검찰·법원에 이은 네 번째 판단이다. 앞서 법원은 준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서울시 공무원의 재판에서,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건 사실이라며 피해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