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력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은 23일(현지시간) 한국계 투자 전문가인 토머스 리 씨를 집중 조명했습니다.
월가의 유명 리서치 기업 펀드스트랫 글로벌 어드바이저(FGA)의 공동 창업자인 리 씨는 대표적인 시장 낙관론자(permabull)로 꼽힙니다. 뉴욕 증시가 반토막 났던 작년 3월 24일 그는 시장에 “올 여름이 끝나기 전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정확히 들어 맞았지요. 하지만 일부에선 “항상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말하는 건 예측이 아니다”고 비판합니다.
방향이 정반대일 뿐 리 씨와 유사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입니다. 항상 시장을 비관한다고 해서 ‘닥터 둠’(Dr. Doom) 또는 퍼머베어(permabear)로 불리지요.
루비니 교수의 예측 역시 최근 거의 정확히 들어 맞으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루비니 교수는 이달 초 “비트코인 거품이 15일을 기점으로 꺼질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날짜가 정확하지는 않았으나 비트코인 가격은 역대급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급락했습니다. 새해 들어 개당 4만2000달러까지 치솟았던 비트코인 가격이 한때 3만달러 밑으로 깨졌지요.
하지만 루비니 교수의 탁월한 식견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이는 현지에서도 많지 않습니다. 루비니 교수는 비트코인이 나온 초창기부터, 또 비트코인 가격이 1000달러도 되지 않았을 때부터 줄기차게 폭락을 예상했기 때문이죠. “고장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a broken clock is right twice a day)는 반응이 나왔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과거 한국에서도 자칭 부동산 정책 전문가가 10년 넘게 ‘시장이 급락할 것’이라고 외치다 투자자들의 조롱 대상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란계 터키 출신인 루비니 교수는 ‘루비니 매크로 어소시에이츠’란 독립 컨설팅 회사를 설립해 본인이 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시장 전망 및 분석 보고서를 유료로 보내주고 강연도 해주는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그는 빌 클린턴 정부 때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았던 경력도 있습니다.
루비니 교수는 시장 비관론자답게, 월가의 상당수 전문가들과 달리 자산을 많이 모으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동차도 소유하지 않고 있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지요.
2009년 인터뷰에선 “교수직 등 일을 꾸준히 해왔고 소득의 30%를 저축해온데다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어 빚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엔 주식에 전 재산의 75%를 투자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5%만 넣고 있다”며 “은행 예금에 넣어봤자 이자가 거의 붙지 않는 게 사실이지만 주식 투자했다가 절반을 날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으냐”고 했습니다.
루비니 교수가 유명세를 탔던 결정적인 계기가 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이던 2006년 9월 ‘다가올 최대 위기’를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했던 겁니다. 그는 “미국 주택 가격이 끔찍한 추락을 경험한 뒤 글로벌 경제를 침몰시킬 것”이라고 예언했고, 대다수가 믿지 않았으나 그의 말은 2년 후 현실화됐습니다.
다만 더 많은 비관적 전망들은 맞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루비니 교수가 최근 새로운 미래 예측을 내놨습니다.
그는 “새 정부 4년 간 백인 인종주의자들의 폭력 시위가 급증하고, 러시아 및 중국의 사이버 공격도 빈번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페이스북 트위터 등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를 촉구했습니다. 올해 미국 경제는 불안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미국 경제에 대해 비관하는 예측은 아직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엔 미국 민주당 지지자인 그의 정치적 신념이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역사와 통계는, 그 인물의 배경이 무엇이든간에 시장 예측이 매우 어렵고 사실상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