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광석, 구리, 알루미늄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최고치를 경신하거나 전고점을 넘어서면서 원자재가 ‘슈퍼사이클’에 접어들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중국 제조업이 활기를 띠면서 경제 회복 가능성이 높아지자 상품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또 미국의 ‘블루웨이브’(민주당의 상·하원 석권)로 인프라 투자 확대 기대, 인플레이션 우려 등이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각종 관련 상품과 펀드의 수익률도 급등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이 같은 원자재 랠리가 향후 10년간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구조적인 상승장의 초입’이라고 진단했다.
펄펄 끓는 원자재 시장
뉴욕증시에서 최근 6개월간 50% 안팎의 수익률을 낸 원자재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는 수두룩하다. 글로벌 광산업체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즈 MSCI 글로벌 금속&채굴업체’ ETF는 지난 6개월 동안 54% 뛰었다. 구리 채굴업체에 투자하는 ‘글로벌X 구리 채굴업체’ ETF도 57% 올랐다. 구리 선물가격에 투자하는 미국 구리 ETF(CPER)도 같은 기간 20% 넘게 상승했다. 반에크의 희토류 ETF(REMX)는 85% 급등했다.
이들 ETF가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은 지난해 8월부터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한 원자재 가격이 6개월 이상 랠리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기민감 원자재인 구리 가격은 올 들어 현물 기준 t당 8000달러 안팎을 오가며 지난해 3월 저점 대비 70% 넘게 상승했다. 구리 가격이 t당 8000달러를 넘긴 건 8년 만이다.
철광석 가격도 사상 최고가에 근접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중국 칭다오항 수입 기준 철광석 가격은 t당 172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2~3월 80달러대 초반까지 떨어졌다가 10개월 만에 두 배 이상으로 폭등했다. 알루미늄, 주석, 아연 등도 최고가이거나 전고점을 돌파했다.
산업금속뿐 아니라 2012년 이후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던 옥수수, 콩 등 곡물 가격도 반등했다. 지난 6개월간 40~50% 뛰었다. 남미, 러시아 등 주요 곡창지대의 이상기후 현상에 중국이 농산물을 대거 수입하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국제 유가는 서부텍사스원유(WTI), 브렌트유, 두바이유 모두 배럴당 50달러를 넘어서며 코로나19 발생 이전 가격을 회복했다.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대체)의 감산 영향 등으로 WTI 가격은 올 들어서만 10% 넘게 올라 배럴당 53달러대를 기록했다.
경기 회복 기대에 인플레 우려까지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강송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백신 보급과 경기 회복 기대, 중국 제조업에 대한 낙관적 전망, 블루웨이브 현실화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오르기 좋은 환경”이라며 “미국 10년 금리가 코로나19 이후 처음 연 1%를 웃돌며 인플레이션 압력도 커졌다”고 설명했다.달러화 약세로 글로벌 자금이 위험선호 현상을 보이고 있고, 미국에선 조 바이든 차기 행정부의 인프라 투자 확대 기대가 커지면서 원자재로 자금이 쏠리고 있다. 원자재는 주로 달러화로 거래되기 때문에 약달러 역시 원자재 값을 부추기는 요소다. 저금리 지속으로 인플레이션 우려도 나오면서 헤지 수단으로 원자재의 투자 가치도 커지고 있다.
10년 만에 슈퍼사이클 귀환
월가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10년간 이어졌던 원자재 랠리가 다시 돌아왔다며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원자재 베팅도 10년 만의 최고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알루미늄, 아연, 니켈 등을 제외한 19개 원자재에 투자하는 선물·옵션 펀드의 순매수(net-long) 포지션은 지난 5일 기준 230만 건으로 2011년 1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투자자들이 순매수 포지션을 취했다는 건 가격 상승 기대에 따른 매수 계약이 하락 전망을 근거로 한 매도보다 많다는 얘기다.
제프 커리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상승장에 진입했다”며 “이런 강세장이 향후 10년간 가격을 지지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상품 시장은 2000년대 들어 중국의 급성장에 힘입어 랠리를 하다 2011년 중국 성장률이 꺾이기 시작하면서 하락세로 돌아섰다. 최근 중국 제조업이 회복됨에 따라 원자재 수요가 살아났다는 분석이다.
박상용/설지연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