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임대사업자를 부동산 가격 폭등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제도를 사실상 폐지한 정부가 다섯 달 만에 시장안정 대책으로 민간 건설임대 확대를 들고나왔다. 민간 임대를 대폭 축소하는 정책을 내놨다가 전세난이 가중되자 다시 민간에 임대 확대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정책을 내놓고 문제가 생기면 땜질하는 식의 오락가락 부동산 정책이 다시 한번 나왔다는 평가다.
건설임대에 ‘트리플’ 세제혜택
정부는 18일 발표한 ‘2021년 경제정책방향’의 부동산 부문 핵심 대책으로 부동산 리츠와 펀드를 통한 건설임대에 세제혜택을 주는 내용을 제시했다. 리츠·펀드 등이 건설임대주택을 짓고 10년간 임대사업을 하면 종합부동산세, 취득세, 재산세 등을 감면하거나 감면 조건을 완화해주겠다는 것이 골자다.종부세 합산 배제 기준과 재산세 감면 기준은 현행 공시가격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질 좋은 중산층 임대주택을 공급하라는 취지다. 취득세 감면 요건은 토지 취득 후 60일 이내 임대 등록에서 사업계획 승인 후 60일 이내 등록으로 완화했다. 토지 취득 후 사업계획 승인까지 1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했다. 일반인이 참여할 수 있는 공모형 리츠에는 주택도시기금 융자 우대 혜택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건설임대에 세제혜택을 주는 것은 전세난 때문이다. 전세 가격이 폭등하자 민간에서 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펴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지난 ‘7·10 부동산 대책’을 통해 민간 등록 임대사업자 제도를 폐지한 것과는 정반대 정책 방향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락가락 민간 임대 정책
정부는 7월엔 임대사업자들이 갭투자를 통해 수많은 주택을 사들여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아파트를 임대주택에서 제외하는 등 사실상 제도를 없앴다.이 조치는 당시 전세난을 가중할 것이란 비판을 받았다. 임대사업자가 주택을 팔면 임대 물량이 급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같은 비판을 주의 깊게 듣지 않다가 실제로 문제가 생기자 정책 방향을 뒤집는 결정을 내렸다.
등록 임대사업자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오락가락 부동산 정책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민간 등록 임대사업자를 통해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며 각종 세제혜택을 발표했다. 양도세 중과를 면제하고, 건강보험료도 깎아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듬해 8개월 만에 양도세 중과가 부활했고 올해 7월 제도가 사실상 폐지됐다.
이 같은 이유로 일부 시장 참여자들은 이번 대책도 언제 바뀔지 모른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선 “건설임대 사업자들도 시장이 정부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경우 바로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식의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건설임대는 공급을 촉진하는 측면이 있다고 해명하고 있다. 기존의 등록 임대사업자 제도와는 다른 정책이라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등록 임대사업자는 이미 공급된 주택을 사들여 임대로 공급하는 반면 건설임대는 신규 건설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에 주택 공급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질 좋은 임대주택 가능할까
건설임대 확대를 위한 유인책이 적다는 지적도 있다. 건설사는 주택을 지은 뒤 바로 분양하는 편이 세제 혜택을 받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정부의 등쌀에 밀려 건설임대에 참여하는 회사가 나오더라도 아파트가 아니라 소형 공동주택이나 원룸이 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내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정부가 부동산시장 안정 대책으로 ‘임대차 3법의 조속한 착근’을 내세운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2년간 전세계약을 연장할 수 있고 전세가도 5%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해서 전세 물량 공급이 급감했는데, 문제의 근원을 대책으로 포장하고 있어서다. 수도권 127만 가구 주택 공급 계획도 있지만 이미 각종 부동산 회의를 통해 발표된 내용이라 시장을 안정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오락가락 대책 속에 지난달 주택 매매가격은 0.54%, 전세 가격은 0.66% 올랐다. 지난 10월 0.32%, 0.47%에 비해 상승 폭이 확대됐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