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제주4·3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배상금만 1조5000억원가량 소요되는 법안이다. 민주당은 사업비 5조원 규모인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관련 특별법’도 함께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지역 표심을 겨냥한 특별법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18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제주4·3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정부와 당의 협의가 마무리됐다”며 “이번 임시국회에서 개정안을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당정은 제주 4·3사건 희생자에 대해 위자료 등의 특별한 지원을 강구하는 내용을 특별법 조항에 넣기로 합의했다. 정부는 관련 지원을 위해 6개월가량의 연구용역을 거친 뒤 2022년 예산안에 반영해 위자료 등을 지급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최고회의 후 이 대표 주재로 국회에서 연 ‘제주4·3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위한 간담회’에서 제주 4·3사건 피해자 유족에게 이 같은 합의안을 전했다. 이 대표는 간담회에서 “위자료의 개념은 (국가의 불법행위 피해에 대해 주는) 배상의 일종”이라고 설명했다.
제주 4·3사건 희생자는 지난 9월 말 기준 1만4533명, 유족은 8만452명에 이른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피해 배상에 약 1조5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4·3특별법이 통과되면 ‘여수·순천(여순) 사건’ ‘노근리 사건’ 등 5조원 안팎으로 추산되는 다른 과거사 사건의 배·보상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제주 4·3법 기준 적용 땐 '남은 과거사' 배상에 4.8조원 들어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제주4·3특별법)’ 개정안은 국회 심사 단계에서부터 논란이 많았다. 과거사 피해 배상 및 보상에 전례없는 대규모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국회와 정부 부처 간에 서로 배·보상 액수 산정을 떠넘기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지난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과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 관계자들은 배상 및 보상 규모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대표발의자인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제주 제주시을)은 제주 4·3 희생자들을 대상으로 보상금을 지급하되, 구체적인 지급 액수와 방법 등은 시행령으로 정할 것을 주장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 등 일부 야당 의원도 지급의 유연성을 높이자며 오 의원을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행안부와 기재부는 피해 배·보상액이 크고 다른 과거사 사건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법으로 규정할 것을 주장했다.
정부는 제주 4·3사건 배·보상 규모를 1조3000억원(희생자 1인당 1억3200만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반면 국회예산정책처는 1조5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1조8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배·보상 액수(2511억원)의 5~8배 규모다.
행안부 관계자는 “제주 4·3사건 피해 보상은 국가재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보상 규모에 대해 워낙 많은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법으로 정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여순 사건이나 노근리 사건, 거창 사건 등에 제주 4·3사건과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국가 재정이 4조8000억원 이상 소요된다”며 “보상은 정치적으로 결정돼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결국 이 같은 논란을 거쳐 18일 정부 연구용역을 통해 배·보상 액수를 확정하기로 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여순 사건 등 다른 과거사 사건에 대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회재 민주당 의원(전남 여수을)은 지난 6월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여순 사건 특별법’ 제정을 당론으로 채택할 것을 제안했다. 과거사 배·보상에 국가 재정이 걷잡을 수 없이 투입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은 선거를 앞두고 각 지역사업도 줄지어 추진하고 있다.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특별법’을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광주 문화전당 건립 및 운영(1조6872억원) 등에 사업비 5조2912억원을 들이는 사업이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