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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영 칼럼] 대한민국이 맞닥뜨린 '중대 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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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12월 9일)던 문재인 대통령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진단이 “절체절명의 시간이자 실로 엄중하고 비상한 상황”(12월 13일)으로 나흘 만에 뒤집혀 국민을 당혹스럽게 했다. 신규 환자가 가파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확진 판정을 받고도 병상 부족으로 집에서 대기하는 사람이 수도권에서만 500명이 넘은 와중에 ‘터널 끝’을 언급한 9일 발언은 경솔했다.

‘빈말’ 논란보다 심각한 건 빠른 확산에 대한 대비가 놀랄 정도로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9일 100명이던 국내 발병 환자가 이달 12일 1030명으로 10배 넘게 늘어났는데도 치료 병상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11월 1일 534개였던 전국 중환자 병상이 이달 12일 541개로 단 7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전담병원을 지정해 대비해야 한다”는 의료계 건의를 정부가 흘려들은 게 큰 문제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데서 빚어지는 정책 혼란과 참사(慘事)의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더 기막힌 건 “누가 뭐래도 우리는 잘하고 있다”는 문재인 정부의 무오류(無誤謬) 강박증이다. ‘24전(戰) 24패(敗)’라는 말을 듣는 부동산정책이 단적인 예다. 지난 11일 대통령이 경기 화성의 13평(44㎡·전용면적)짜리 공공임대주택을 방문해 “4인 가족이 살 수 있겠다”는 말을 했느냐 아니냐를 놓고 빚어진 논란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간 촌극의 압권이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부동산 문제의 핵심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집이 충분하게 공급되고 있느냐 여부다. 주택을 ‘주거 문제를 해결해줄 필요최소한의 시설’이라는 관점으로 봐서는 부동산 과열을 결코 해소할 수 없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는 시대에 1만달러에도 못 미치던 시절의 시야(視野)로 밀어붙이는 주택공급정책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그 까닭은 자동차에 비유하면 명쾌해진다. 소득과 생활수준이 높아진 사람들에게 승용차는 단순히 ‘필요최소한의 이동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쾌적함과 성취감도 채워줘야 하는 대상이 됐다. 벤츠 BMW 제네시스 같은 고급 승용차를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아반떼면 충분하다”며 소형차 공급만 고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다행히도 자동차회사들은 수요에 맞춰 차종을 공급하고 있고, 벤츠와 제네시스 같은 고급차 가격이 폭등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너무도 당연하고 명백한 사실에 눈감고, 수많은 전문가의 지속적인 건의에 귀 막은 무지(無知)와 오기의 정책 폭주가 우리나라 곳곳의 기반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기업인들의 의욕을 꺾고 애써 쌓아온 사업 기반을 흔들어대는 법과 제도가 고삐 풀린 듯 쏟아지고 있는 현실은 정말 심각하다. 21대 국회가 문을 연 지 6개월 남짓한 사이에 기업인의 경영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규정한 법률이 18개나 신설됐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어기면 징역 2년, 산업현장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최소 5년의 감옥살이 형벌을 받게 하는 법이 시행을 앞두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신설됐거나 통과를 앞둔 기업인 형사처벌 규정을 합치면 62년 동안 징역을 살아야 하는 판이다. 덩치가 작은 중견·중소기업일수록 살벌해진 경영환경을 버텨내기가 쉽지 않다. 상당수 기업 사이에서 “문을 닫으란 말이냐”는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여당에 5분의 3 가까운 의석을 몰아줬다지만, 총 지지율은 40%대에 불과했다. 진정으로 책임 있는 집권당이라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긴 안목으로 신중하게 정책을 결정하는 게 마땅하다. ‘만들면 법이 된다’는 수준의 정치가 대한민국을 농단하는 현실을 더 이상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제러미 애덜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보수들의 반동에 저항하라”고 외친 좌파 경제사상가이지만, “어떤 사회도 경직되고 비타협적인 주장의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 나라의 민주적 수준은 자신에게도 오류가 있음을 인정하는 집단들이 열린 대화를 유지할 수 있는 역량에 달렸다”는 말도 했다. 이 나라의 권력자들이 지금이라도 새겨듣고 곱씹어야 할 금언이다.

ha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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