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 부동산정책을 입안하는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은 집값 급등과 전세난의 주된 원인을 저금리와 유동성 증가 탓으로 돌려왔다. 김 장관의 경우 지난 3일에도 최근 전세난이 임대차법 때문이 아니냐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저금리 때문”이라고 답했다.
과연 그럴까. 한국경제신문이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은행 등의 자료를 분석해 세계 주요 10개국에서 유동성 증가와 집값 상승을 비교했다.
주요 10개국은 미국, 유로존, 일본, 호주,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러시아,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이다.
그 결과 한국의 유동성 증가율은 10개국 중 9위였으며, 집값 상승률은 1위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 공급을 늘렸지만 주택난이 심해진 것은 정책 실패에 더 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올 9월 말 시중 통화량(M2·원계열)은 3132조3008억원으로 지난해 말에 비해 7.51% 늘었다. M2는 현금과 요구불 및 수시입출금식 예금 등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통화지표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돈을 가장 많이 푼 국가는 미국이었다. 올 들어 유동성 증가율이 21.90%였다. 호주(12.39%) 브라질(11.59%) 남아공(11.22%) 러시아(9.74%) 등이 뒤를 이었다. 그다음은 인도네시아(9.61%) 멕시코(8.96%) 등이었다. 한국보다 유동성 증가율이 낮은 국가는 일본이 유일했으며 5.82%였다.
올 상반기 기준 집값이 가장 많이 뛴 곳은 서울과 모스크바로 5% 수준이었다. 글로벌 부동산컨설팅업체 세빌스의 주거용 부동산 가격 상승률 기준이다. 세계 주요국 도시 28곳이 조사 대상이었다. 베를린(3%대) 도쿄(2%대) 등도 가격이 올랐지만 런던 샌프란시스코 케이프타운 뉴욕 시드니 등은 0.1~4.0% 떨어졌다.
경제학자들은 국내 부동산시장 과열의 원인은 유동성이 아닌, 정부 정책 실패 탓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경제학회가 8월 경제학자 3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6%는 수도권 집값 급등의 원인으로 부동산 정책 실패를 꼽았다.
김 장관은 이런 점을 의식해 19일 24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때는 “최근 전세 문제는 저금리, 가구 분화, 매매시장 안정조치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말을 바꿨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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