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7위 홈센터(생활용품·인테리어 전문 대형마트) 업체 시마추를 놓고 벌이는 기업 간 인수합병(M&A) 싸움이 일본 산업계에서 화제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 적대적 M&A를 금기시하는 일본 산업계의 암묵적 합의가 깨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홈센터 2위 업체 DCM홀딩스는 앞서 시마추를 인수하기로 합의하고 주식 공개매수에 나섰다. 그러나 ‘일본의 이케아’로 불리는 니토리가 30%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DCM의 공개매수에 동의했던 시마추 경영진이 지난 12일 니토리의 품에 안기기로 입장을 바꾸면서 판세는 사실상 굳어졌다.
하지만 DCM이 포기하지 않고 공개매수 기간을 한 달 연장하면서 시마추 쟁탈전은 일본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M&A 드라마가 됐다. 적대적 M&A를 도둑질 취급하는 일본 재계에서는 경영진끼리 이미 합의한 공개매수에 대항해 M&A 싸움에 나서는 사례가 매우 드물다.
니토리의 시마추 인수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진흙탕 싸움도 불사하는 일본 경영 환경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란 평가가 나온다.
일본 경영인들이 싸움꾼으로 바뀐 것은 영업 환경이 급변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코로나19와 재택근무 정착으로 소비 행태가 크게 변하면서 일본 소매업체들 사이에선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욕실·부엌용품부터 원예용품, 건축자재까지 파는 홈센터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가장 많이 늘어난 업종 가운데 하나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소비자들이 집을 꾸미는 데 관심이 높아진 덕분이다. 막대한 이익을 바탕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선 대형 홈센터 업체가 증가하면서 M&A 환경도 무르익고 있다.
일본은 식료품, 생활용품, 가구 등이 발달한 나라다. 소비자들의 기호가 다양해지면서 일본 유통업계에서는 ‘다른 분야의 전문점을 인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가구 전문업체인 니토리가 홈센터 시마추를 인수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일본 산업의 또 다른 특징은 상당수 기업이 저평가돼 있다는 것이다. 시마추는 지난 8월 말 현재 자기자본비율이 76.5%에 달하는 우량기업이지만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배에 불과하다. DCM이 시마추의 순자산(1815억엔)보다 낮은 1600억엔(약 1조6937억원)을 인수가로 제시한 배경이다.
지난 20년간 미국 상장사가 7000개에서 4000개로 줄어드는 동안 일본 상장사는 3800개에서 4000개로 오히려 늘었다. 미국에서 산업 재편이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일본은 산업 구조조정의 ‘무풍지대’였음을 보여주는 통계다. 스즈키 히데타카 물류경제연구소 주임연구원은 “일본에서 소비자의 수요가 다양해지면서 업태를 넘나드는 구조조정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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