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시장의 예상을 깨고 LG화학이 추진 중인 전지사업(배터리)본부 분할안에 ‘반대’ 표를 던지기로 해 파장이 주목된다. 국민연금은 그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에서 “취지에 공감하나, 국민연금의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내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LG화학이 계획대로 전지사업을 분할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LG화학은 지난달 전지사업 분할을 결정하면서 “(신설 예정 법인 주식을 기존 주주들에게 주지 않는) 물적 분할 방식으로 떼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 인해 기존 주주들, 특히 개인투자자들이 ‘LG화학 물적 분할로 인한 피해를 막아달라’는 청와대 청원을 올릴 정도로 거세게 반발했다. “세계 배터리 시장은 2025년에 182조원에 달해 메모리 반도체(169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런 사업이 떨어져 나가면 주주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국민연금의 반대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이런 논리도 물론 일리가 있다. 하지만 국내외 대다수 의결권 자문사가 ‘찬성’을 권고한 실정이다. 세계 양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신설법인이 다양한 자금조달 방안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LG화학 분할안이 독립성, 전문성을 인정받는 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권고까지 무시하면서 반대할 사안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이 주가 하락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기업들 미래투자에 딴지를 놓는 게 기업가치 개선이나, 국가적으로 옳은 일인지도 심각하게 되돌아볼 문제다. 국민연금은 지난 7월 말 현재 1014개 상장사의 지분(평가액 약 139조원)을 보유했고, 이 중 99곳은 10% 이상(90조원) 들고 있다. 이렇게 영향력이 막강한 국민연금이 단기적인 수익률 제고에 급급해 중·장기 투자를 가로막는다면 기업은 무슨 수로 미래 먹거리를 키울 수 있겠나.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방향을 결정하는 수탁위는 근로자, 지역가입자, 사용자 대표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로 인해 의사결정이 객관적으로 이뤄지기보다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LG화학 분할안에 대한 반대표 행사 결정은 이런 우려가 현실화한 사례라고 할 만하다. 정부는 하루빨리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객관성·전문성을 높일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이 국민연금에 목을 매는 상황은 주주가치 제고에도, 국가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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