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이 타계한 지난 25일 우연히 '동학개미'들의 주식투자 열기를 눈으로 확인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일요일 회사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들른 단골 동네 이발소에서입니다. 저녁 늦은 시간 머리를 깎고 있는데, 마침 가게에 들른 이발소 사장님의 딸 부부가 나누는 얘기를 듣게 됐지요. 30대로 보이는 부부는 이 회장의 별세를 화제로 올리며 앞으로 삼성계열사중 어떤 회사 주가가 오를지에 대해 나름 진지한 토론을 벌였습니다.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지배구조와 계열사간 출자 관계 등을 꼼꼼히 따지던 부부는 삼성물산 주식이 많이 오를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더군요. 그리곤 "내일 증시가 열리자마자 삼성물산 주식을 사자"고 다짐했습니다. 경제기자인 제가 듣기에도 전문 투자가 못지 않은 분석과 결정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삼성물산 주식은 13.5%나 올라 삼성 계열사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지요.
요즘 개인들의 주식 투자 열기는 이렇게 동네 이발소에서도 접할 수 있을 만큼 광범위하고 뜨겁습니다. 올들어 집값 급등에 내집 마련 꿈을 꾸기 어려워진 2030을 중심으로 주식 투자에 나선 개인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국내 주식계좌수는 작년말 2936만2933개에서 지난 9월말 3374만6088개로 15%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1년간 증가율 8.6%의 두배 가까운 것입니다.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들어 늘어난 주식계좌의 절반 이상은 20~30대 젊은층이 개설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국내 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상당히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삼성전자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제 기억으론 2~3년 전만해도 삼성전자와 관련된 온라인 기사엔 긍정적인 댓글과 부정적인 댓글이 5대 5 정도로 달렸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댓글이 많습니다.
삼성전자에 대한 정부 규제나 정치권 압박과 관련된 기사엔 여지 없이 '삼성 좀 그만 괴롭혀라' '삼성전자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 '우리 경제가 지옥에 떨어질 때 삼전은 항상 버텨줬다' 는 등의 댓글이 달립니다. 이런 댓글에 수많은 '좋아요'가 붙는 것은 물론입니다. 저는 이런 변화가 삼성전자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이 늘어난 영향도 크다고 봅니다. 2018년 삼성전자가 주식을 50대 1로 액면분할해 일반 개인투자자들이 손쉽게 주식을 살 수 있게 된 덕분이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은 여러모로 긍정적인 면이 많습니다. 단순히 삼성전자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좋아졌다는 이유 때문은 아닙니다.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이 늘어남으로써 그 회사의 과실(果實)을 더 많은 국민이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가 더 많은 이익을 내면 낼 수록 주가가 오르고 배당은 늘어납니다. 그럼 삼성전자에 투자한 국민들도 그 이익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올 3분기만 해도 삼성전자는 매출액이 역대 최대치인 66조9600억원에 달했고, 영업이익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58.8% 증가한 12조35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삼성전자의 수익이 대주주와 임직원 뿐아니라 더 많은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하는 방법은 이 회사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선 이것도 대기업의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경우 소득양극화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삼성전자가 돈 많이 번다고 배 아파서 세금이나 왕창 뜯자고 할게 아니라 삼전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국민 입장에선 그 과실을 나누는 더 건전하고 현명한 방법"이라는 혹자의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삼성전자 뿐아니라 국내 주요 기업들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이 더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국민들이 자신이 투자한 기업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면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겁니다. 더 나아가 투자한 기업에 애정을 갖고 응원을 보내면 기업들엔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면 우리 사회의 기업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과 반(反)기업 정서도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봅니다. 그러려면 더욱 투명한 자본시장 시스템과 중장기 투자 문화 정착 등은 필수이겠지요.
차병석 논설위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