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국제기구와 각국 전망기관들이 돌리는 경제예측 모델에는 대개 수백 개의 방정식이 들어간다. 여기에 거대한 양의 통계자료가 투입되는데도 산출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다. ‘과학’의 외피를 입은 듯하지만 정확도에선 한계가 분명한 게 경제예측이다.
2008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런던정경대 방문 때 일화가 대표적이다. 여왕이 금융위기 원인을 묻자, 영국학술원은 답변을 위해 포럼까지 조직했다. 그러고도 ‘경제학자들이 각자 분야에서 위기 징후를 발견했지만, 이것이 뭉쳐 큰 위기를 만들어낼 줄은 몰랐다’는 궁색한 답에 그쳤다. 그만큼 경제예측이 어렵다는 얘기다.
코로나19가 대유행으로 번진 올초 이후 세계 경제, 특히 미국 경제를 놓고 ‘경기(예측) 곡선’이 백출하고 있다. 경제전망처럼 ‘성장률 O.O%’를 내놓는 것은 아니지만 ‘V자’ ‘U자’ ‘L자’ 전망이 나와 논란이 분분했다. 글자 모양처럼 ‘V자’는 급격한 경기침체 후 급반등, ‘U자’는 완만한 회복, ‘L자’는 장기침체를 의미한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V자 반등 예상의 위험성을 경계했음에도 그런 주장을 펼친 경제학자가 적지 않았다.
여기에 2001년 미국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였던 스티븐 로치(현 예일대 교수)가 처음 사용해 유명해진 ‘더블딥(double dip·이중침체)’이 재연될 것이란 ‘W자’ 전망, 회복과 침체가 반복되는 ‘WW자’ 전망도 나왔다. 낙관론자들은 아래로 떨어졌다가 서서히 우상향하는 나이키 로고 모양의 ‘스우시 커브’, 이것이 더 가파르게 올라가는 ‘J자 커브’를 그릴 것이란 관측도 내놓았다. 반대로 비관론자 중에선 ‘침체→부분 회복→횡보’ 예상을 수학의 제곱근에 비유해 ‘루트(√)커브’로 부르는 전문가도 있다.
급기야는 코로나 이후 양극화를 가리키는 ‘K자’ 커브까지 등장했다. 아마존 애플 등 정보기술(IT) 업계와 일부 대기업, 화이트칼라는 실적이나 소득이 급격히 회복되는 반면 전통기업과 중소기업, 자영업자, 블루칼라는 반대로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엔 또 어떤 커브가 나올지 궁금하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국내외 기관들의 내년도 경제전망이 나올 시기가 됐다. 다양한 경기예측 커브가 쏟아지지만 경제학자들 간에 컨센서스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불확실한 안갯속이다. 전망이 맞든 틀리든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경제전망을 어떻게 참고하고 활용할지는 각자 하기에 달렸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