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 급증하는데 4년 뒤에야 재정건전성 관리하겠다는 정부’.
기획재정부가 5일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방안을 발표하자 터져나온 비판이다. 재정준칙은 나랏빚이나 재정 적자 규모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리지 못하게 하는 법적 장치를 말한다. 정부는 최근 재정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어 준칙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준칙 적용 시기는 2025년부터로 정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한참 뒤에야 끄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정부는 유예 기간을 둔 이유로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등 주요국도 그렇게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재정준칙을 둔 대부분 나라는 도입 즉시 시행했다. 일본 프랑스 스위스 스웨덴 덴마크 등이 그랬다. 기재부 관계자도 “유예 기간을 둔 나라는 소수인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예외적인 사례를 ‘아전인수’ 식으로 끌고 와서 정책을 합리화한 셈이다.
심지어 독일, 영국도 사례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독일이 ‘연방정부의 연간 신규 차입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0.35% 이하로 한다’는 준칙을 2011년 도입하면서 적용 시점을 2016년으로 한 점을 유예 사례로 들었다. 하지만 독일은 2010년 868억유로인 차입금을 2016년까지 100억유로로 줄이고, 이를 위해 매년 100억유로를 감축하겠다는 규정을 뒀다. 사실상 도입 즉시 이행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영국도 비슷하다. 영국은 2017년 ‘구조적 재정수지적자를 GDP의 2% 이하로 관리한다’는 재정준칙을 도입하면서 이 목표를 2021년까지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4년 뒤 시행’이 아니라 지금부터 노력해 4년 뒤 목표를 맞춘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영국은 실제 준칙 도입 이듬해인 2018년 목표를 조기 달성했다.
한국은 지난달 발표한 ‘중장기 재정운용계획’에서 2024년까지 매년 GDP 대비 5% 이상의 재정적자를 내겠다고 공언했다. 계획에서 밝힌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대로 가면 정부가 이번에 마련한 재정준칙을 매년 어기게 된다. 도입 즉시 재정건전성 관리 노력을 기울인 독일, 영국과 엄연히 차이가 난다.
정부의 아전인수식 정책 합리화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는 2018년 최저임금 급등으로 경제에 부작용이 커졌다는 비판이 나오자 “임금근로자의 90%가 소득 증가율이 개선됐다”는 통계를 들어 정책을 옹호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실업자가 급증한 것이 문제의 핵심인데, 일자리를 지킨 임금근로자만의 통계를 따로 내서 ‘긍정적’이라고 포장해 비판을 받았다. 유리한 통계·자료만 인용해 문제 있는 정책을 포장하는 것은 정책 신뢰도만 깎아내린다는 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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