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후 첫 대목이라 두 배 가까이 들여놨는데 다 탔어. 추석까지 장사는 공쳤지.”
21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청량리 청과물시장에서 만난 과일가게 사장 김두용씨는 시장 앞에서 망연히 앉아있었다. 이 시장에서 30년 넘게 장사했다는 김씨는 추석 대목을 앞두고 사과, 배, 포도 등을 1500만원어치씩 들여놨다. 김씨는 “과일은 물론 집기류까지 다 타서 5000만원 가까이 손해를 봤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날 소방당국은 청량리 청과물시장에서 오전 4시 32분께 발생한 화재를 오전 11시 53분께 완전히 껐다고 밝혔다. 인명 피해는 없으나 점포와 창고 등 시설 20개가 소실됐다. 이 중 7개는 전소됐다. 불은 전통시장 내 통닭집에서 발생해 인근 청과물시장으로 옮겨 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불길을 목격한 한 상인은 “불길이 일자 주변 상인들이 소화기 2대를 들고 진화에 나섰으나 불길을 잡는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해당 시장에는 화재 알림장치와 스프링클러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불이 꺼지자 상인들은 잿더미 속에서 불에 그을리고 물에 젖은 과일들을 꺼내 옮겼다. 검게 탄 과일들이 시장 바닥을 뒹굴었다. 한 상인은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과일도 탄내가 배서 상품 가치가 없다”며 “극소량의 판매 가능한 과일도 떨이로나 팔 수 있어 반의 반값이나 받을는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60대 상인 나모씨도 “40년 장사하면서 이런 큰 불은 처음”이라며 “창고까지 타서 추석 전에 장사를 재개하기 어려울 거 같다”고 토로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재산피해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추석 대목을 대비해 점포마다 수천만원어치의 물량을 확보해뒀기 때문이다. 동영화 청량리청과물시장상인회장은 “피해 상인 중 절반 정도만 화재보험에 가입된 상태”라며 “가입됐다고 해도 보상액이 적어 시와 구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동대문구청은 “피해 상인 분들의 화재보험 가입 여부를 조사 중이며, 관련 법령을 검토해 이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도 재발 방지책과 피해 보전 방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