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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 vs 펩시' 주도한 마케팅 귀재, 켄달 전 펩시코 CEO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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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시콜라가 코카콜라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탁월한 마케팅 전략을 주도했던 도널드 켄달 전 펩시코 최고경영자(CEO)가 별세했다. 20일(현지시간) 펩시코에 따르면 켄달 전 CEO는 향년 99세로 지난 19일 영면했다.

켄달 전 CEO는 1947년 펩시코에 입사해 처음에는 병입공장과 트럭 운송부서에서 일했다. 그러다 영업부서로 옮겨가며 능력을 인정받아 31세의 나이에 미국영업부문의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1963년 42세의 나이로 펩시코의 사령탑에 올라 23년 동안 CEO로 장수했다. 그가 CEO로 재직하는 동안 펩시코의 매출은 40배 성장했다. 그는 당시 콜라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던 코카콜라의 아성에 도전, 이른바 콜라전쟁을 벌인 인물이다.

켄달 전 CEO 시절 펩시코가 선보인 여러 마케팅 중 ‘펩시 챌린지’는 지금도 회자되는 사례다. 사람들에게 펩시콜라와 코카콜라 맛을 블라인드 테스트하도록 하고, 펩시콜라의 맛이 코카콜라보다 뛰어나다고 응답한 사람이 더 많았다는 결과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펩시 세대’라는 용어를 내세우며 코카콜라를 구세대의 음료로, 펩시콜라를 젊은이의 음료로 마케팅했다.

소비자들에게 펩시콜라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각인시킨 이벤트도 그의 작품이었다. 1959년 구소련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켄달 전 CEO는 오랜 친구인 리처드 닉슨 전 미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구소련의 지도자인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총리·서기장에게 펩시콜라를 권하는 데 성공했다. 흐루쇼프 총리가 펩시콜라를 맛있게 마시는 사진이 전세계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펩시콜라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했다. 켄달 전 CEO는 펩시콜라가 미국 소비재 중에서는 최초로 구소련에 진출했다는 점을 평소 큰 자랑거리로 삼았다. 그는 인수합병(M&A)에도 강점을 보이며 1965년 감자칩 등 스낵제조사인 프리토레이 인수를 주도했다.

펩시코는 이날 성명을 내고 “그는 펩시코의 건축가였다”고 추모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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